내년에 마흔두 살 재택근무자의 고군분투기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재택근무자는 잠옷으로 출근해 잠옷으로 퇴근한 하루였기에 설거지는 했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 세수를 하고서 잠옷을 과감히 벗는다. 재택근무자가 잠옷을 벗는다는 건 그날 활동을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이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재택근무자여 일어나라.
음식물 쓰레기 두 봉지와 일반 쓰레기 한 봉지까지 챙겨본다. 이럴 때 몰아서 캐시 워크 포인트도 받아야 하기에 청바지 뒷주머니에 시크하게 핸드폰을 꽂는다.
"3킬로그램입니다."
더 얘기하는 기계를 뒤로 후다닥 일반 쓰레기도 커다란 통에 넣는다. 아직 쓰레기차가 안 왔는지 여러 쓰레기봉투들이 모여있다. 다다다 달려가서 1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거울 안의 검은 마스크를 쓴 재택근무자는 이쁘다. 음식물 쓰레기 카드를 싱크대에 놓고 손을 닦는다. 미리 계획했다는 듯이 다시 운동화를 신고 엘리베이터를 잡는다.
공동현관을 지나서야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8시 50분이다. 출근 10분 전이다. 발은 이미 움직이고 있지만 주차 차단기 앞을 지날 때 심하게 고민한다. 가? 말아? 가? 다시 들어가?
지하철역 앞에 있는 커피숍은 재택근무자가 아침 산책을 할 때마다 고민하던 장소이다. 테이크아웃을 하기에는 종이컵이 싫고, 안에서 마시기에는 시간이 촉박해요. 이렇게 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하는 데는 온 우주의 염원과 한 개인의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우주의 도움으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진동한다. 잠옷을 벗는다. 텀블러를 꺼내 놓는다. 발이 먼저 움직인다.
뛴다.
그렇다. 재택근무자의 머릿속에는 크레마 가득한 고소한 아메리카노밖에 없다.
킬킬킬
실실실
으으으
히히히
마스크 안에서 온갖 의성어들이 춤을 춘다.
그렇게 좋구나.
미시오
아니오
오레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473ml 손잡이가 있는 빨간색 뚜껑과 흰색 본체의 조화가 돋보이는 스탠리 텀블러 안에 성스러운 커피가 담긴다. 얼음 3개 넣어달라는 주문은 새까맣게 증발했지만 괜찮아. 천천히 마시면 되지.
당기세요
그러세요
사랑해요
텀블러 손잡이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같이 뛴다.
싱글싱글
히죽히죽
벙글벙글
낄룩낄룩
이 순간만큼은 단편 영화의 주인공이지.
내복이 보이는 발목에 구겨진 청바지에 찐 핑크 오리털 조끼를 입은 재택근무자는 뛴다.
집에 도착하니 8:55.
거봐. 다녀오길 잘했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