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말론 향수병을 들어 올린다.
JO MALONE LONDON GRAPEFRUIT COLOGNE
조 말론 런던
그레이프 푸루트 코롱
향수를 한 번 뿌린다.
가고 싶은 순간에 도착했다.
잠깐만 멈춰봐. 오른손에는 50원짜리 오렌지물 얼린 거를 들고 있고, 한 입 시원하게 깨물고 오른발을 내밀었다. 열한 살 시월 그 오른발에 신었던 검은 메리제인 슈즈가 달려오던 자동차에 저만치 날아갔다.
트럭에 네가 가려져서 안 보이잖아. 잠깐만 멈춰봐. 왼쪽 오른쪽 차가 오는지 잘 살펴봐. 그것 봐. 오른쪽에서 차가 달려오지. 그걸 보내고 길을 건너면 돼. 이제 쉬는 시간 끝났으니까 다시 모여서 흥부놀부 안무 연습하자.
향수를 두 번 뿌린다.
가고 싶은 순간에 도착했다.
말을 하면 돼. “엄마 나는 김치찌개 먹고 싶어. 새언니가 좋아하는 떡국 말고 나는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입덧해서 힘든데 왜 서운하게 그렇게 얘기해?”
그걸 삼킨다고 소화가 되는 게 아니잖아. 깊게 박혀있으니 당당히 미워할 거야. 그래서 얼마나 당당했어? 그래서 시원했니? 그렇게 버려온 순간들이 차곡히 쌓여서 산을 이뤘다. 미움은 그렇게 강산을 집어삼켰다. 삼십 대를 미움으로 잃어버렸어요. 찾아주세요. 그런들 소용이 없잖아.
향수를 세 번 뿌린다.
가고 싶은 순간에 도착했다.
특차 원서 내지 말고 정시로 두 개만 써보자. 알아. 특차 쓰면 입시고민 안 해도 되고, 넉넉히 합격할 거고, 장학금 받고 다닐 거고, 알지 알지. 누구나 도전은 무섭고 떨어지는 건 싫잖아. 안전한 길이 있는데 그럴 필요 없었지. 누가 얘기해 주면 좋았을 텐데, 20년 후에 악착같이 매달리지 않은 부분은 늘 아쉬울 거라고. 영어가 좋으면 취미로 하면 된다고. 다양한 학과를 고민해 보라고, 100명을 뽑는 학과 말고 20명을 뽑는 학과에 내라고. 네가 생각하는 게 다른 관점에서는 다르게 보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