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질수록 더 천국인
비상이다. 복권판매점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생겼다. 동네사람 몇몇이 복권가게 사장님이 로또 1등에 당첨되어서 가게를 접은 거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사실이라면 부러운 일이지만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에 직면했다. 복권가게가 없어지면서 백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두 개가 된 것이다. 이놈의 아이스크림 때문에 몇 개월째 식단관리에 실패하고 있는데 아이스크림 가게가 두 군데로 늘어나면 집에 가는 길에 유혹을 두 배로 견뎌야 한다. 왔다 갔다 하는 길에는 네 번. 대체 인내심이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하는 하는 건가.
평생 단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던 내가 작년 언젠가부터 도무지 아이스크림을 끊을 수가 없다. 밀가루와 설탕을 일절 먹지 않는 식단을 강박적으로 지키던 시기에 주치의 교수님이 술, 담배, 육가공품을 제외하곤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 먹어도 된다면서 “매일 먹는 거 아닌데 뭐 어때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이스크림을 매일 먹고 있는 내 모습은 상상도 못 하실 테지. 어쩌면 애당초 끊으려는 시도가 잘못된 게 아닐까. 이 맛있는 걸. 이렇게 달고 시원한 걸.
아이스크림을 참는 건 자신이 없는데 계단 오르는 건 자신 있어서,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집까지 계단으로 올라간다. 식단 관리를 못하면 체중 관리라도 하자는 작전이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때론 상큼하고 때론 달디단 아이스크림을 먹다 보면 12층에 금방 도착한다. 층수가 높아질수록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어지는 건 물론이다. 정신 놓고 올라가다 14층에서 다시 되돌아 내려가기도 한다. 당을 과하게 섭취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걸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걸까.
며칠 전에 친구들과 안부를 나누다가 이 얘기를 했더니 한 명은 잘한다고 했고 한 명은 다 소용없는 짓이라고 했고 한 명은 그저 귀엽다고 했다. 아무래도 모두의 의견이 다 맞는 것 같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다행이다.
새로 생긴 아이스크림 할인점에는 아직 들어가 보지 않았다. 어쩌면 원래 있던 곳에 없는 아이스크림이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 있던 가게에도 아이스크림 종류는 많으니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집에 오는 길에 두 개 사려던 아이스크림을 꾹 참고 하나만 사서 나왔다가 아까 안 산 아이스크림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쉽게 주어진 것이 기쁘면서도 두렵다. 집이 12층이 아니라 24층이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계단 오르는 건 진짜 자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