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책가방을 뒤집어 쏟았다.
미리 말하지만, 진짜로, 뒤집을 생각까지는 전혀 없었다.
등교를 준비하던 아이가 전날 깜박하고 꺼내놓지 않은 물통에 대해 사과하며 호기롭게
“엄마 미안해 엄마가 좀 꺼내줘” 하고 소리쳤다.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면서.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책가방을 열었는데, 날벌레가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인 정도로 그 안은 끔찍했다.
친구와 아마도 수업시간에 몰래 주고받았을 쪽지 조각 여러 개(글씨도 처참)
언제부터 가방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젤리와 다 녹아 물컹거리는 초콜릿
터지지 않아 줘서 기특한 귀퉁이가 찌그러진 멸균팩 오렌지주스
구겨진 부분의 글씨가 이미 닳아 없어진 영어 단어 시험지
무언가를 접은? 색종이
형태를 알 수 없는 그림을 오려낸 A4용지의 바깥 부분
무엇을 닦았는지 알 수 없는 휴지
입구가 열려 다 마른 물티슈
때가 꼬질꼬질한 작은 인형이 달린 키링
먼지 구. 덩. 이.
인간이 로봇을 군인 보조용으로 사용하다가 포기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전쟁터에서 고장이 나면 버리고 가야 하는데 전우를 두고 갈 수 없다며 그 무거운 쇳덩이를 이고 지고 뛰어서라고.
인간은 얼마나 많은 것을 사랑하는지.
인류는 그러므로 유지되는 건 아닌지.
아이의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물건들을 보며 사랑을 떠올린다. 오늘도 사랑이 화를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