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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식 Nov 19. 2024

인간은 얼마나 많은 것을 사랑하는지

아이의 책가방을 뒤집어 쏟았다.

미리 말하지만, 진짜로, 뒤집을 생각까지는 전혀 없었다.


등교를 준비하던 아이가 전날 깜박하고 꺼내놓지 않은 물통에 대해 사과하며 호기롭게

“엄마 미안해 엄마가 좀 꺼내줘” 하고 소리쳤다.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면서.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책가방을 열었는데, 날벌레가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인 정도로 그 안은 끔찍했다.


친구와 아마도 수업시간에 몰래 주고받았을 쪽지 조각 여러 개(글씨도 처참)

언제부터 가방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젤리와 다 녹아 물컹거리는 초콜릿

터지지 않아 줘서 기특한 귀퉁이가 찌그러진 멸균팩 오렌지주스

구겨진 부분의 글씨가 이미 닳아 없어진 영어 단어 시험지

무언가를 접은? 색종이

형태를 알 수 없는 그림을 오려낸  A4용지의 바깥 부분

무엇을 닦았는지 알 수 없는 휴지

입구가 열려 다 마른 물티슈

때가 꼬질꼬질한 작은 인형이 달린 키링


먼지 구. 덩. 이.




인간이 로봇을 군인 보조용으로 사용하다가 포기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전쟁터에서 고장이 나면 버리고 가야 하는데 전우를 두고 갈 수 없다며 그 무거운 쇳덩이를 이고 지고 뛰어서라고.


인간은 얼마나 많은 것을 사랑하는지.

인류는 그러므로 유지되는 건 아닌지.

아이의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물건들을 보며 사랑을 떠올린다. 오늘도 사랑이 화를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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