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땜에 지각이야, 내비!

by 나식

집에서 국립국악원까지 2시간 넘게 걸리는 바람에 수업에 10분 지각했다.

우리가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어젯밤부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안다면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알람을 4개 맞추고, 머리를 미리 감았다. 차에서 먹을 아침도시락을 싸기 위해 자기 전에 재료들을 데우기만 하면 되도록 준비해 두고, 전기포트에도 끓일 물을 미리 담아놓았다. 입을 옷도 꺼내 놓고, 허둥대지 않기 위해 체크리스트도 만들었다. 이틀을 같은 스케줄로 움직이니 몸에 익어서인지 오늘은 어제보다 여유도 느껴졌다. 그리고 수업 시작 12분 전에 도착한 어제와 같은 시각에 집에서 출발했다.

처음 길에 들어섰을 때는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자차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은 알 수 있다. 다른 날과 같은 요일 같은 시간 같은 조건에 사고나 공사라는 돌발상황이 없을 때여도, 아 오늘 내가 뭔가 밀리는 기류에 탑승했구나 라는 느낌을. 처음 내비게이션을 켰을 때 안내 된 소요 시간 1시간 21분이 운행 10분이 지나도록 줄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늘 예상하고 있다. 집에서 예술의 전당까지 연말 저녁에 최장 2시간 5분 걸린 전적이 있고, 티맵을 사용하다 보면 10분 정도 늘어나는 건 우습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그 시간까지 감안해서 20분 일찍 움직인다.

집에서 국립국악원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길은 매우 간단하다.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가다가 성수대교를 건너서 올림픽도로를 타고 가다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초 IC로 나가면 예술의 전당이다. 국립국악원은 예술의 전당 옆에 있고, 나는 이 길을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도 갈 수 있다. 시간이 늘었다 줄었다 길이 밀렸다 뚫렸다를 반복하며 어제보다 5분 정도 늦게 성수대교 진입구간에 도착했다. 5분이 늦어도 수업 시간 10분 전에 도착한다.

동부간선도로 자체도 상습정체구간이지만 그중에서도 성수대교 진입로는 새벽 시간 외에는 늘 정체가 극심하다. 오늘도 역시나 진입로를 1킬로도 더 남겨둔 지점부터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씽씽 가는 옆차선을 부러워하며 찔끔찔끔 움직이고 있는데, 내비게이션이 새로고침을 하며 소요시간이 15분이나 단축된 새로운 방향으로 안내를 했다. 성수대교로 진입하는 뚝섬로와 올림픽대로가 너무 밀릴 땐 영동대교를 넘어서 압구정을 통과해 한남대교 남단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는 길을 이용하기도 해서 오늘은 그 길이 낫다보다 하고 핸들을 돌려 진입로에서 빠져나왔다. 거북이걸음에서 벗어나 영동대교 진입로를 향해 가고 있는데 예상보다 너무 먼 곳에서부터 길이 밀리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그냥 성수대교 탔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네비가 영동대교가 아니라 군자 쪽으로 들어가서 유턴을 해서 나와서 다시 성수대교를 타는 방향으로 안내를 하는 게 아닌가. 이게 뭐지? 이 길은 난생처음 가보는 길인데? 나는 내가 아는 길 말고, 어차피 내비가 알려주는 대로 온 거 알려주는 대로 가보기로 했다. 15분 단축을 철석같이 믿고.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고난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내비가 안내하는 모든 구간에서 극심한 정체를 겪었으며, 군자로 들어가 유턴하는 지점은(무려 2개 차로 동시 유턴) 트럭과 버스와 유턴 차선에서 빠져나오는 차와 들어가는 차들까지 대혼돈의 카오스가 따로 없었다. 십 년이 넘는 운전 생활 중에 처음 보는 장면이었고 피난 가는 난리통이 딱 이렇겠구나 싶었다.

지각이 확정되는 순간 점식이는 너무 속상하고,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수업에 지각 할 수도 있다. 지각한다고 수업을 못 듣는 것도 아니고, 돈이 아까울 만큼의 수강료를 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각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지 않기로 했고 일찍 가서 교실에서 친구들과 친해질 시간을 갖고 수업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내비게이션의 엉뚱한 안내 때문에 수업에 지각을 하는 건 우리의 지각 예상 사유 안에 없는 일이었다. 운전시간이 2시간이 넘어가고 연말에 겪은 최장 시간을 넘기자 점식이를 내려주고 티맵 회사를 폭파하러 가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지만 나는 지성인이고 법을 수호하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으므로 그러지 않는 대신 얌전히 주차장에 들어갔다. 주차를 마치면 티맵을 삭제하고 카카오내비를 깔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어제까지만 해도 주차장에 자리가 많았는데 25분 차이로 주차장이 만차가 되고 주차선 앞으로 평행주차를 한 차들까지 꽉 차있었다. 이 광경을 본 순간, 티맵 어플을 꾹 누른 뒤 삭제 버튼을 누르는 건 마지막 가는 길을 너무 고이 보내주는 것 같았다. 조각조각 픽셀단위로 난도질해서 박멸하고 싶다는 잔인한 생각을 하며 주차장을 돌고 있는데 어제 내가 주차했던 자리 앞에서 모녀가 평행주차 되어 있는 차를 밀지 못해 차를 빼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의 내 모습이었다. 차에서 내려 모녀와 함께 평행주차 되어 있는 차를 밀었다. 도와드릴까요? 여기가 앞에 턱이 있어서 차가 잘 안 밀리더라고요. 끝까지 밀어도 벽에 부딪히지는 않으니까 더 미셔도 돼요. 오지랖을 부리고 함께 힘을 썼다. 모녀에게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받았다. 더불어 모녀의 차가 빠진 자리에 주차를 하는 행운도. 후진으로 주차선 안에 차를 넣으며 아싸 하고 생각했다. 그리곤 티맵을 삭제하는 걸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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