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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Mar 08. 2023

신입사서, 자료실 대직을 하자

북스타트 책꾸러미

  성공적인 첫 고객 응대 전화를 마친 나는 정신없이 신입 사서로서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배치될 도서관 인테리어 관계자를 만나기도 하고 벤치마킹도 다니면서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당시에도 나의 임시 근무지는 도서관 본관에 위치한 수서실이었다. 장비 업무를 하고 도서관 규정을 익히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와중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풍요씨, 새싹실로 대직 나가세요~”


  ‘새싹실’은 영, 유아 그림책 위주로 장서가 구성된 자료실이다. 도서관 시설 중에서 가장 눈에 띄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새싹실은 도서관 입구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아이들이 접근하기가 좋다. 도서관에 들어와서 몇 발자국만 옮기면 자료실에 들어갈 수 있다. 자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린이 전용 화장실이 보이고 대출대가 자리 잡고 있다. 대출대를 기준으로 정면에는 영아대상의 책들이 있는 신발을 벗을 수 있는 따뜻한 온돌 바닥 구역이 있고, 오른편에는 낮은 키의 서가에 유아용 도서가 십진분류 되어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다양한 어린이 책들을 만날 수 있는 설레는 공간이다.


  대직을 나가야 한다는 지시를 듣고 나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노트와 펜을 챙겨 계단을 내려갔다. 새싹실 담당 사서 선생님의 교육이 있겠지만 곧 혼자서 자료실 하나를 봐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그간의 사회경험을 토대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참고로 내가 새로운 일을 배울 때에는 아래와 같은 사항을 꼭 지키는 편이다.

- 교육을 들을 때는 모든 사항을 필기할 것

- 헷갈리는 부분은 교육 중 물어봐서 궁금증을 해결할 것

- 그마저도 자신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서 담당자 선생님께 ‘정말 막막할 때는 연락을 드려도 되느냐’는 허락을 받을 것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정도만 마음에 새긴 뒤 인수인계를 받으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다. 긴장되더라도 내게는 차차선책까지 있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한다. 감사하게도 인수인계를 해주신 선배는 친절한 분이었고 내가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그 덕에 자료실 적응은 빠르게 이뤄졌다.

  빠른 적응에도 불구하고 헷갈리는 업무는 꼭 있었다. 내게는 ‘북스타트 책꾸러미’를 나눠주는 일이었다. ‘북스타트 책꾸러미’란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에게 어린이 발달에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단계별로 선별하여 배포하는 활동이다. 매 해 도서를 선정하며, 선정된 도서는 다양한 지역 사회 활동으로 이어져 아이들의 독서 교육과 습관에 도움을 준다. 책꾸러미를 나눠주는 업무는 사실 지금도 헷갈리는 것 같다. 사전에 담당자가 책꾸러미 신청을 받으면 유아가 출생 후 몇 개월이 지났느냐에 따라 다른 꾸러미를 나누어줘야 한다. 천천히 해나가면 별 탈 없이 진행될 업무지만, 처음 이 시스템을 접한 내게는 아동의 개월수를 파악하고 꾸러미를 주는 일이 어렵고 헷갈리게만 느껴졌다.


  불안에 떨고 있을 무렵 드디어 책꾸러미를 찾으러 온 첫 이용자가 자료실로 들어왔다. 당황한 나머지 눈앞에 적힌 수령자 리스트가 또렷하게 보이지 않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이용자분께 말했다.


  “제가 오늘 이곳이 첫 근무라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양해 부탁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한 후 하나하나 살펴봤다. 다행히 이용자께서는 친절히 아동의 개월수를 안내해 주셨고 이내 리스트에서 찾아 책꾸러미를 건넬 수 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기억이 선명한 것을 보면 얼마나 내가 긴장했었는지 알 수 있다. 시간은 꽤 걸렸지만 끈기 있게 기다려주신 이용자님께 감사드리고 너무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일을 해낸 내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자료실 근무는 순조롭게 돌아갔다. 일지를 작성하기도 하고 이용자에게 자료실 안내도 하면서 자신감이 더욱 붙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분관 도서관으로 발령받을 무렵에는 이 자료실을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 가득한 공간, 내가 처음 근무한 자료실이 정겹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이 자료실을 떠날 수 있었다. 새로 발령받은 곳이 새롭게 오픈하는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새싹실에서 근무한 경험은 어린이 자료실을 조직하고 운영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지금까지도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선배 사서 선생님과 느린 나를 이해해 주신 이용객 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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