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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Aug 12. 2021

[사서회상록] 첫 고객 응대 전화를 받았을 때


도서관에 입사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어느 날이었다.

여전히 눈칫밥 먹어가며 하이에나처럼 해야 할 일을 스캔하며 지내던 나는 식후 졸음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정리실에서 함께 근무한 모든 분들이 내게 잘 대해주셨으나 알아서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전 직장이 남자동료만 있던 영업팀인지라 ‘다, 나, 까’로 말을 끝내곤 했다. 그 모습을 선배들이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 있지만 쌀쌀했던 초봄, 도서관으로 출근하던 길은 낯설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초목에 새 생명이 움트는 계절, 작은 버스에 몸을 싣고 굽이굽이 길을 따라가면 등장했던 나의 첫 도서관. 도서관은 예산 등의 이유로 외진 곳에 지어졌다고 했는데 그 덕분에 사서들은 멋진 자연환경이 둘러싸인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멋진 환경과는 대조적으로 멋지지 못한 이용객들과 근무 여건은 예외다.) 3층 사무실 창문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도 참으로 멋졌다. 멋진 풍경에 매료되어 잠시 멍을 때리던 그때.


‘따르릉-’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내 바로 옆자리 전산 담당자의 전화였다. 전산 담당자는 실제로 유능하기도 했고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자리를 자주 비웠는데 바로 그때 전화가 온 것이다. 모든 직장인들은 알 것이다. 신입 때는 전화받기가 지상 최대의 과제인 것처럼 두렵고 떨린다는 사실을. 그렇지만 헌 신입이었던 나는 조금 달랐다. 전화받기에 길들여져 있던 것이다. 영업팀에 근무하며 목소리톤이며 인사말들을 갈고닦은 나는 주저 없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 대신 받았습니다. 00 대리님 자리입니다.”


사실 전화를 받는 순간 놀람과 동시에 내 진짜 신입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때 너무 떨린 나머지 선배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전화 좀 대신 받아달라고 했었다. 그로부터 세 번째 회사에서는 몸이 알아서 전화응대법을 기억하다니. 물론 그렇다고 떨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메모까지 남겼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을 가라앉히느라 힘들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고작 전화받는 것 가지고 호들갑이냐는 베테랑 사서님이 계시다면 꼭 다시 과거의 자신을 소환해보셨으면 좋겠다. 분명 떨렸을 거다. 고객 컴플레인을 받거나 모르는 업무를 질문받았을 때, 게시판에 올린 행사 글에 운영일자가 틀려서 고객 전화를 받았을 때 어떠했는지. 그리고 이 전화응대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다행히 나는 전화응대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 좋았던 첫 경험 덕분에 다른 전화도 자신 있게 받을 수 있었다. 일 년 뒤 전화응대로 친절 사원이 돼보기도 했다. 별도의 포상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초심을 잃지 않은 것 같아서 뿌듯했다.

도서관을 나와 공방을 운영하는 요즘은 전화를 받을 일이 없다. 역으로 도서관에서 온 강사 문의 전화도 언니가 받는다. 나는 오히려 도서관 생태를 잘 알기 때문에 실수를 더 많이 한다.(비용 흥정 실패 등등..) 그 사실이 모순적이라 웃기기도 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까 더 많이 이해가 돼서 흥정에 실패할 수밖에.


그리도 덧붙여 전화를 받을 때마다 ‘감사합니다’를 꼭 붙였는데,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정말 감사해서 그렇게 말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이로 인해 퇴사한 이후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감사하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작지만 정당한 태도가 사서들에게도 꼭 적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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