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가 창시한 용어지만 오이디푸스는 신화다. 현대 심리학이 밝혀낸 인간 행동 패턴은 이솝우화와 닮았다. 근현대 철학은 고대 철학의 발굴에 불과하는 말도 있다. 이처럼 옛 지식은 허투루 전해지지 않는다. 학문으로 정립되지 않았을 뿐 선조들의 지혜는 인간을 관통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어떨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고진감래 흥진비래(苦盡甘來 興盡悲來),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오고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온다. 선조들은 도파민 항상성을 알고 있던 것일까? 항상성은 생존 장치의 일종이다. 숙취가 없으면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 쉬우며 운동 후 휴식이 쓴맛이면 운동할 맛이 안 난다. 항상성이 없다면 재벌은 조증에 걸려야 한다. 여기까지는 '낙'을 쾌락으로 해석한 결과다. 고진감래의 숨겨진 의미는 쾌락을 행복으로 바꾸어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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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취를 이룬 사람의 우울을 목격한다.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돈도 넉넉한데 어째서 그런 선택을?", "고생을 못해봐서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거야." 세월이 흐르며 합리적인 근거가 나오기 시작했다. "진정한 행복은 성취보다 과정에 있다." 칙센트 미하이는 몰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몰입에서 유발되는 호르몬은 쾌락의 도파민이 아닌 행복의 세로토닌이라는 것이다. 쾌락은 항상성에 의한 고통이 뒤따르지만 행복은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그런데 성취를 이룬 후에는 몰입에 빠지기 어려우니 쾌락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쾌락은 과도한 고통이 뒤따른다. 그래서 우울한 것이다. 사람들은 쾌락과 행복을 혼동하여 그들의 우울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서전 등에서 자주 보이는 말이 있다. "행복을 느끼는 기간은 사업을 키워나갈 때이며, 진정한 고통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때 찾아온다." 브런치를 떠올려 보자. 구독자는 1000명인데 한 달 동안 한 명도 늘지 않는 사람과 구독자는 10명이지만 매일 5명씩 증가하는 사람을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사람들은 구독자 1000명을 보유한 쪽이 행복할 거라고 단정한다.
위와 같은 이론은 관점을 넓혀주는 단서다. 부유한 사람의 일 중독을 돈 욕심만으로 해석하지 않게 된다. 나는 백종원과 박진영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벌만큼 벌었으니 가족과 개인을 위해 사는 게 어떠냐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두 사람 속마음까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일중독은 우울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인기가 사그라든 연예인의 재도전도 그렇다. 그들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일이 많지만 모두가 돈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고진감래를 만화 <원피스>에 빗대곤 한다. 원피스는 세상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전해지는 보물이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독자가 원하는 이야기는 보물을 찾는 과정이지 찾고 난 이후가 아니다. 보물을 찾는 과정 자체가 세상 모든 것, 즉 원피스인 셈이다. 만약 원피스를 찾는 과정이 보물이라 말했다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고진감래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고생 중에 얻겠지만 고생 끝에 얻는다고 말해 두어야 사람들이 움직인다. 고진감래는 거기까지 감안한 조언이다. 어쨌든 행복을 얻으려면 성장을 멈추지 말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뭐라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