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성적을 분석할 때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그중 전통적이고 가장 명시적인 수치는 타율일 것이다.
OPS, WAR... 여러 가지 지표가 있겠지만 여전히 가장 지배적인 수치는 타율이다.
'1군 통산 타율이 3할 이상인 타자'라고 말하면 그 타자의 이름은 아직 몰라도 야구를 즐기는 팬들의 머릿속에는 '훌륭한 타격을 가진 타자'로 각인된다.
3할. 열 번 중 세 번. 일반적으로 보면 그렇게 높은 확률도 아니다.
강수확률이 30퍼센트라면 우산을 들고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기업 보고서에 무슨 지표인지 몰라도 30퍼센트라고 떡하니 적혀 나온다면 왜 이렇게 저조한 지에 대해 또 다른 보고서를 쓸 생각에 짜증부터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야구에서만큼은 다르다. 야구는 언제나 절대적으로 타자가 불리한 게임이다.
9회 끝까지 타격을 한다고 해도 3번을 나오기가 쉽지 않은 기회. 높은 위치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투수의 총알 같은 투구.
그 적고 빡빡한 기회를 뚫고 하루에 1번, 많으면 2번만 치면 괜찮은 타격을 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적절한 상황에서 때려야 더 좋은 평가를 받겠지만, 조금 단순하게 보자면 그렇다.
생각해보면 삶이 다 똑같은 게 아닌가 싶다. 열 번 중 세 번만 제대로 해내도 제대로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은 그렇게 말은 안 하지만 말이다. 긍정적인 시그널은 5할이 넘어야 하고, 이왕이면 7할은, 8할은 넘어야 성공적인 지표라고 말하지만 말이다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싶다. 3할만 잘해도 충분히 잘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느끼고 있지 않은가 싶다. 종목이 어떻든 말이다.
극소수의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은 이들을 제외하면 누구나 평가를 받는 위치에 서야만 한다. 그리고 평가는 냉혹하면 냉혹했지 절대 공정하지는 않다.
평가를 내리는 이들이 나에게 선고하는 아웃카운트는 다양하다. ‘노력이 부족하다.’, ‘재능이 없다.’, ‘시대가 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무 이유 없이 싫다.’도 아웃카운트로 불릴 수 있다.
얼마나 살아가는 게 불합리한지, 이 지면에 나열하지 않아도 피차 모두가 아는 일 아닌가. 아무리 노력해도 손가락질받던 나와 달리 별 노력 안 하고도 성공한 사람의 풍문을 듣다 보면 느끼지 않나. 처음부터 우리가 들어서는 배터박스가 얼마나 불리하게 만들어져 있는지 말이다.
그런 불리한 환경에서 나름의 성과를 열 번 중에 세 번이라도 꾸준히 낼 수 있다면 리그에서 3할을 치는 타자와 같은 성공한 인생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조금 더 당당해도 괜찮지 않을까.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텍스트의 나열이 100개가 쌓여간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글은 몇 개나 될까.
100개 다 인정받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70개도 바라지 않는다. 그냥 딱, 100개 중에 30개만 참 잘 쓴 글이라고 엄지를 들어주면 그것만으로도 100개의 글은 다 값진 결과가 될 것이다. 3할이니까.
내 인생의 모든 순간도 빛날 수 없고, 추한 부분이 있을 것도 분명히 안다. 100년을 산다면 그중 몇 년이 잘 산 인생이 될까. 바라건대 단 30년만이라도 후회 없이 산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30%밖에 이루지 못한 저조한 지표의 인생이라 불릴 수 있겠지만, 통산 3할짜리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빛나는 인생 아닌가. 10번 중에 3번씩 적절한 안타를 쳐낼 수 있는 삶이라면 그것으로도 짜릿한 인생이 아닌가.
그 뒤로 남겨진 7할의 수많은 어이없는 삼진과 아웃들, 병살은 아무래도 괜찮다. 뒤돌아보면 내 인생은 결국 3할짜리 인생으로 모두에게 기억될 것이다.
내일은 안타를, 이번 기회에 괜찮은 성과를, 그래도 잘했다는 칭찬을,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충분히 아직 3할을 칠 타석은 많다.
그러니까 오늘의 아웃은, 내 실수와 사유를 설명해야 할 저조한 결과와 재미없는 글들은 단순한 아웃일 뿐이다.
버려진 글도, 커리어도, 인생도 아니다. 3할짜리 글이고 3할짜리 커리어고 3할짜리 인생이다. 분명 그런 좋은 인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