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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Jan 11. 2019

무식해서 용감했던 어느 날의 창업기 (하)

깊이 있는 깨달음은 모든 것이 지난 뒤에야 발견한다.


이제 창업기의 마지막 장이다. 마지막 장이라는 의미는 이 사업도 결국 문을 닫았다는 뜻이겠지.

어쩌면 내가 스스로를 기획자라고 칭하고 창업기를 브런치에 가장 먼저 쓰는 이유도 바로 이 마지막 장을 쓰기 위해서이다. 내가 조우한 많은 기적들 중, 돌아보면 가장 큰 기적은 이 마지막 장에 모두 담겨있다.







왜 그만둔 거야? 계속하지 그랬어.



이 글을 꾸준히 읽어주신 감사한 독자분들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실 것 같다. 여태껏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였으니 이제 나쁜 이야기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18살 사명감 하나로 무식하게 시작한 사업은 예상외로 앞의 글과 같이 많은 기적들을 일으켰다. 심지어 그 사명감이 제법 훌륭한 축에 속하다 보니, 각종 매체뿐만 아니라 수상할 것들이 줄을 이었다. 어느 대학을 가냐는 썩 중요치 않았다. 이와 같은 스토리는 대학교 입학사정관들의 관점에서는 너무나 매력적인 요소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모 출판사에서는 나의 이야기를 21세기 인재라고 칭하며 글을 써주었다. 스무 살이 넘자, 정계에서도 컨택이 왔다. 어느 순간 난 모든 것을 너무 쉬이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쉽다'는 것이 가져오는 기적을 경험했다. 수익을 내는 것, 누군가에게 봉사하는 것, 함께 모이는 것, 후원하는 것, 모금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을 '어렵지 않다'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가소로이 여기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나는 18살 때처럼 행동하지 않으면서,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취해있었다.



19.9살, 내 안의 무언가 잘못되어만 간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선진국형 인재를 축하하고 수상하기 위한 자리였다. 스무 살 미만의 저마다 독특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이 모여있었다. 지금 와서 이 이야기를 하기가 매우 부끄럽지만 되돌려보면 당시 나는 '에휴 다들 뭐 하는 거냐. 해봤자 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중학생이 내 옆으로 조심스레 다가왔다.


혹시 언니, 제 롤모델이 되어주시겠어요?


"네?"

너무 놀랐다. 롤모델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런 건 뭔가 마더 테레사라든가, 날 키워준 우리 엄마나 아빠가 롤모델이라든가 이런 분들에게만 언급될 수 있는 단어 아닌가. 심지어 그 귀여운 중학생 아이는 나보다 훨씬 똑똑해 보였고, 눈망울이 반짝이고 있었다. 놀란 맘에 '제가 그럴 자격이 있는진 모르겠지만'이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사실 그 날 기점으로 멍하게 며칠을 보냈다.


다행히 '역시 난 대단해.'가 아니라 훗날 저 아이가 나라는 사람을 어디서라도 마주치게 되면, 저 질문을 후회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해온 일들이 순전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시간을 다시 돌려서 다시금 해낼 수 있냐?라고 물으면 자신 있게 '아니요. 못해요.'라고 할 정도로 매일이 기적 같은 나날이었고, 나의 능력 밖의 영역이었다. 신이 어여삐 보고 경험하게 해 주신 덕분이 가장 클 것이고, 함께 해준 친구들과 부모님의 서포트가 있기에 가능했던 영역임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스스로 객관화를 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한 번의 계기로 쉽게 바뀌는 인간 일리는 만무하다.



22살, 이제 더 이상 나는 자격이 없었다.


스물두 살, 학교를 다니며 예전보다는 덜 열정적으로 하나씩 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소녀를 만났다. 한 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소녀였다. 그녀는 두 눈이 잘 안 보이는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를 해오고 있었는데, 나는 그런 그녀가 기특해 보여 괜히 꼰대 같은 한마디를 건네었다. "정은(가명)이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언니,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제 한쪽 눈이 잘 안보이니까, 이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다는 점도 그렇고,  이 분들도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저를 통해  위로받으시거든요. 참 다행이죠?



누가 아주 무거운 돌을 내 머리에 떨어뜨린 느낌이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날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게 만들었다. 동시에 최초의 나의 사명감이 떠올랐다. 나는 도대체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간단했다. 첫 글을 보시면 이런 문장이 있다.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나는 모든 것에는 응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왜?'라는 질문 끝에 얻은 답이었다.  스스로 끊임없이 왜를 질문한 끝에 얻은 것은 한 개인이 세상에 마땅히 당연스럽게 얻어야 하는 장점이라는 건 없단 생각이었다. 내 사지가 멀쩡한 것도, 내 눈이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것도, 내가 어떤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그것조차도 사회에 어떠한 바를 기여하기 위함이란 생각에 나는 잠시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의 벗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기적'을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재앙이 시작된다.



불현듯 '내가 잘나서 이 일을 해낸 거야. 오롯이 나의 능력이야'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못해 이 모든 것에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조금 더 성숙했다면 아마 다른 방향으로 이어갔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내가 경험한 것들을 잊지 않고 다만 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뒤를 이어서 이 조직을 책임질 사람을 키울 정도의 역량은 아니었던지,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위의 두 사건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충격이었던 손에 꼽는 사건들이다. 결심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경험을 하게 만든 것은 지금보다 더 큰 그림을 바라볼 줄 알며, 더 명확한 사명감으로 가득 찬 한 인격체로 성장하며 더불어 살아가라는 목표의식과 그 토대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그리고 끊임없이 겸손하고, 나를 앞세우기보다는 함께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마음가짐을 만들어 주었다.


동시에, 이 일련의 과정들과 그 이후 내가 만들어간 시간들은 나로 하여금 기획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난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면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동시에 내가 당시 사업을 해내는 의사결정 과정들이 놀랍게도 기획자가 추구해야 하는 행동 패턴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 감격스럽기도 하다.


매번, 내 앞에 주어진 것들을 바라보다가 나의 무지함 혹은 환경적, 심리적 등 다양한 원인으로 좌절을 할 때면 내가 경험한 것들을 떠올린다. 무식했을 때 해내었던 기적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해내었던 변화들을 떠올리고 나를 다독인다. 그리고 그 경험했던 시간이 훗날 헛되지 않도록, 어제보다 더 나아질 나의 역할을 고민하는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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