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의 어느 날이었고 모리셔스로 출장을 가기 위해 회사에서 어레인지를 해준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는 길이었다. 새하얀 수트를 즐겨 입는 드라이버 아저씨도여느 때처럼 에너지 가득한 모습으로 핸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한 번도 마음 놓고 걸어본 적은 없는 곳이지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요하네스버그의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아무 생각 없이 창밖 풍경을 보다 잠이 들었던 평소와 달리 의문점 하나가 머릿속을 맴돌았다는 것이다.
'내년에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한 달에 비행기를 평균 6번, 많을 때는 10번 이상 타고 다니는 생활. 공항으로 가는 넓은 길, 출국 수속, 입국 심사, 공항에서 빠져나와 클라이언트 사무실로 바로 가서 노트북을 펼치고 미팅을 하고 일을 하고 거절할 수 없는 회식을 간다.비슷한 이야기를 경청하고, 호텔로 돌아가 내일 할 일을 생각하며 잠드는 일과의 반복. 이 일련의 과정이 갑자기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또 1년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내 대답은 NO 였다. 물론 훨씬 더 바쁜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많지만 그런 식으로 비교할 문제는 아니었다. 새해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사표를 냈다. 일을 시작하고 3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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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이 떠돌이 생활을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건대 내 나름대로 철저한(또는 어설픈?) 계획이 있었다. 일종의 '믿는 구석'이랄까. 남아공은 사실 차가 없으면 생활이 굉장히 불편한 곳이다. 한동안 다른 분들의 차를 얻어 타다 마침내 나도 첫 차를 구매했다. 그동안 번 돈과 수능을 치고 딴 면허증이 합작하여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스즈키 매장에 진열된 전시용 하얀색 스위프트를 결제한 날,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언젠가 아프리카를 떠날 때, 이 차를 팔고 그 돈을 전부 다 아프리카 여행에 쓸 거야. 마음껏 즐기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가야지. 그거 하러 온 거잖아' (그 후는 모르겠고..) 이게 바로 내 믿는 구석이었다. 미리 예산 배정 컨펌이 끝난 여행 계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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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행은커녕, 비행기도 타기 싫은 상황이 오다니 당황스러웠다. 이제 나는 뭘 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