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오버를 하며 걱정과 여유를 동시에 느끼며 퇴사 날짜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두바이에서 같이 일했던 클라이언트가 팀장님을 통해 메시지를 전해왔다. 내가 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말레이시아에 한 두 달 정도 일손이 필요한데 도와줄 수 있냐고 했다. 그때부터 며칠 동안 다시 '회사원', '일'의 키워드를 머릿속에서 굴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결정을 위해 자문을 해야만 했다.
나는 과연 일을 하기 싫어서 회사를 그만뒀던 것일까?
내 대답은 ‘아니다’였다. 그보다는 떠돌이 생활에 지쳤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한 답이었다. 뭐, 어쩌면 단순히 입사 3년 차에 대부분이 겪는다는 회사 권태기일지도 모르겠다.
예측이 안 되는 삶을 살고 싶었던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졸업 후 뭘 하며 먹고살지 상상이 안 되는 불어불문과를 선택했다. 불확실해서 더 재밌다고 생각했다. 커리어를 위해서는 두바이에서 경력을 쌓고 이직을 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지만 그건 내 옵션에는 없었다. ‘내 인생의 어떤 순간을 아프리카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아프리카로 갔고 그곳에서 이십 대 중후반을 보냈다. 3년간 두바이, 튀니지, 카타르, 남아공, 모리셔스, 마다가스카르, 리유니언, 잠비아 같은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다만 회사 사정상 출장 일정이 급작스럽게 잡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때문에 당장 다음 주말에 내가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함을 안을 수밖에 없었다. 주말 약속을 잡을 수 없는 일상이었다.
예측 불가한 삶을 쫒다가 만난 ‘불확실한 일상’에는 분명 즐거운 면이 가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함이 느껴졌다.
자의와 상관없이 발을 딛는 공간이 너무 자주 바뀌다 보면 갑자기 삶이 공중에 붕 떴다가 튕겨나가는 느낌이 든다. 불확실함에 매료되어 불빛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이 전구에 부딪힌 후 허둥지둥하는 게 딱 내 모습이었다. 솔직히 지금의 나라면 팀장님께 담당하는 나라를 바꿔달라고 제안을 하거나, 출장을 가서도 짬을 내서 내 시간을 만들었을 것 같은데 그때는 출장 = 무조건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너무 지쳐서 포기를 해버린 것이다.
당장 한국에 가도 할 것도 없고,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고 여행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래, 한 달 정도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그 후에 뭘 할지 생각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짐을 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미래를 고민하거나 상상하는 능력이 아주 부족한 편이다.
3년간의 떠돌이 생활의 흔적들은 캐리어 두 개와 백팩 하나, 손가방 하나로 정리가 됐다. 3년 전 대구에서 두바이로 날아갈 때처럼.
자고로 떠돌이는 물건에 미련을 버리는 편이 정신 건강에 유리하다.
또 언제 아프리카 대륙에 오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아프리카에서 지낸 2년 넘는 시간들이 통째로 없어지는 건 아니다. 물리적 거리는 같지만 심적 거리가 한결 가까워진 것도 수확이었다. 아프리카는 더 이상 미지의 대륙이 아닌, 언제든지 다시 올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살던 집이었다.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이들, 내 눈에 들어온 풍경들, 새로운 장소들, 그 속에서 태어난 생각들, 기록들, 웃음과 눈물이 내 안에 남아있다. 미련은 없었다.
말레이시아로 가기 위해 요하네스버그 공항으로 가는 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지의 대상이었던 아프리카가 온전히 내 삶과 공존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참으로 신기하지.
3년 전의 상상이 현실이 된 시간을 보냈다. 고마움과 후련함이 가슴속에서 따뜻하게 퍼져나갔다.
너무 흔해서 싱거워진 그 말, 하지만 그 말을 직접 찍어먹어 보면 오만가지 맛이 나는 그 말 - 사람 일은 역시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배운 게 있다...
. 시간은 흐르고 과정과 경험은 남아있다.
퇴사를 하고 3일 후, 요하네스버그에서 출발하여 카타르를 지나 마침내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