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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로운 곳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에서 말레이시아로

by 레아리 Jul 12. 2022

핸드오버를 하며 걱정과 여유를 동시에 느끼며 퇴사 날짜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두바이에서 같이 일했던 클라이언트가 팀장님을 통해 메시지를 전해왔다. 내가 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말레이시아에 한 두 달 정도 일손이 필요한데 도와줄 수 있냐고 했다. 그때부터 며칠 동안 다시 '회사원', '일'의 키워드를 머릿속에서 굴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결정을 위해 자문을 해야만 했다.


나는 과연 일을 하기 싫어서 회사를 그만뒀던 것일까?

내 대답은 ‘아니다’였다. 그보다는 떠돌이 생활에 지쳤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한 답이었다. 뭐, 어쩌면 단순히 입사 3년 차에 대부분이 겪는다는 회사 권태기일지도 모르겠다.



예측이 안 되는 삶을 살고 싶었던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졸업 후 뭘 하며 먹고살지 상상이 안 되는 불어불문과를 선택했다. 불확실해서 더 재밌다고 생각했다. 커리어를 위해서는 두바이에서 경력을 쌓고 이직을 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지만 그건 내 옵션에는 없었다. ‘내 인생의 어떤 순간을 아프리카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아프리카로 갔고 그곳에서 이십 대 중후반을 보냈다. 3년간 두바이, 튀니지, 카타르, 남아공, 모리셔스, 마다가스카르, 리유니언, 잠비아 같은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다만 회사 사정상 출장 일정이 급작스럽게 잡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때문에 당장 다음 주말에 내가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함을 안을 수밖에 없었다. 주말 약속을 잡을 수 없는 일상이었다. 


예측 불가한 삶을 쫒다가 만난 ‘불확실한 일상’에는 분명 즐거운 면이 가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함이 느껴졌다.

  

자의와 상관없이 발을 딛는 공간이 너무 자주 바뀌다 보면 갑자기 삶이 공중에 붕 떴다가 튕겨나가는 느낌이 든다. 불확실함에 매료되어 불빛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이 전구에 부딪힌 후 허둥지둥하는 게 딱 내 모습이었다. 솔직히 지금의 나라면 팀장님께 담당하는 나라를 바꿔달라고 제안을 하거나, 출장을 가서도 짬을 내서 내 시간을 만들었을 것 같은데 그때는 출장 = 무조건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너무 지쳐서 포기를 해버린 것이다.



당장 한국에 가도 할 것도 없고,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고 여행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래, 한 달 정도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그 후에 뭘 할지 생각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짐을 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미래를 고민하거나 상상하는 능력이 아주 부족한 편이다.


3년간의 떠돌이 생활의 흔적들은 캐리어 두 개와 백팩 하나, 손가방 하나로 정리가 됐다. 3년 전 대구에서 두바이로 날아갈 때처럼.

자고로 떠돌이는 물건에 미련을 버리는 편이 정신 건강에 유리하다.




또 언제 아프리카 대륙에 오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아프리카에서 지낸 2년 넘는 시간들이 통째로 없어지는 건 아니다. 물리적 거리는 같지만 심적 거리가 한결 가까워진 것도 수확이었다. 아프리카는 더 이상 미지의 대륙이 아닌, 언제든지 다시 올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살던 집이었다.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이들, 내 눈에 들어온 풍경들, 새로운 장소들, 그 속에서 태어난 생각들, 기록들, 웃음과 눈물이 내 안에 남아있다. 미련은 없었다.


말레이시아로 가기 위해 요하네스버그 공항으로 가는 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지의 대상이었던 아프리카가 온전히 내 삶과 공존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참으로 신기하지.

3년 전의 상상이 현실이 된 시간을 보냈다. 고마움과 후련함이 가슴속에서 따뜻하게 퍼져나갔다.



너무 흔해서 싱거워진 그 말, 하지만 그 말을 직접 찍어먹어 보면 오만가지 맛이 나는 그 말 -
사람 일은 역시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배운 게 있다...

.
시간은 흐르고 과정과 경험은 남아있다.




퇴사를 하고 3일 후, 요하네스버그에서 출발하여 카타르를 지나 마침내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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