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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리 May 21. 2022

2. 대륙을 떠도는 섬 같은 생활

나는 사주나 점을 잘 믿지 않지만 내가 믿고 있는 문장이 하나 있다. 그 이야기로 이 글을 열어볼까 한다. 매년초 엄마는 가족들 새해 신수를 보러 간다. 그런 거 믿지 말라고 해도 매년 가는 엄마. 한 가지 웃긴 게, 딸에 대해서는 매해 비슷한 대답만 듣고 온다. "그 집 딸은 어차피 누구의 말도 안 들으니 잔소리할 필요가 없다. 그냥 놔두면 알아서 산다."

알아서 잘 산다, 인지 
어차피 말을 안 들으니 잔소리나 걱정으로 에너지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잘 산다>로 믿기로 했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약 한 달 뒤 나는 두바이로 날아가 직장인이 되었다. 나는 유난히 현실감각이 없던 대학생이었다. 대학을 6년이나 다녔지만 내가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은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직업세계를 탐구하고 싶어 관련 교양 수업도 들어보았지만 이미 은퇴 후 연금 계획까지 세우는 학생들을 보니 기가 죽을 뿐이었다. 

다만 이왕 일을 해야 한다면 낯선 곳에서 하고 싶고, 그 낯선 곳이 아프리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아프리카는 스물다섯의 내게는 미지의 장소이자 흥미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가본 사람이 아무도 없고, 가고 싶어 하는 이도 없었기에 청개구리 심보로 더 가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거리가 멀어서 여행하는데 돈이 많이 들 것 같다는 현실 인식은  '아프리카에 가서  전공인 불어도 마음껏 써보고 아프리카 땅도 밟아보고 그 대륙에서 돈까지 버는 !'로 마침내 정리가 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일기장에만 적어본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 목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면허증만 있지 운전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이십 대 중반 대학을 갓 졸업한 나 같은 사람을 뽑는 회사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선으로 아프리카 대신 두바이에서 일을 구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새로운 나라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이 나를 설레게 했다. 입사 후 몇 개월이 지난 후 마침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사가 새로 설립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팀장님께 지사 이동을 요청했다. 직장 생활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된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내 의견을 회사에 어필한 적이 또 있나 싶을 정도로 아프리카에 가야 하는 이유를 열심히 전달했다. 꼭 붙잡고 싶은 기회였다. 



매니지먼트의 오케이! 가 떨어진 후 나는 웃고 엄마는 울었다. (부모님께는 아프리카 게 갈 날짜가 나오고 난 후 통보식으로 전달했다. 이런 딸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실제로 나중에 남아공에 관한 내용을 검색을 하면서 엄마는 울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일을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아프리카 최하단에 있는 커다란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짐을 풀었고 그곳에서 보랏빛 꽃으로 가득 찬 두 번의 봄을 지냈다. 그 와중에 내 여권은 점점 두꺼워졌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출장 다니는 시간이 더 길어졌기 때문이다.

인도양의 보석*, 모리셔스 Mauritius

인도양의 프렌치 파라다이스*, 리유니언 Reunion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 마다가스카르 Madagascar 

(*나라 앞의 수식어는 그 나라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붙는 말을 인용하였다. )


보석처럼 아름답고

천국처럼 평화로우며

낯선 느낌으로 가득한 나라들을 배회하며 열심히 일을 하며 이십 대 중후반을 보냈다. 정말 아프리카에 와서 돈을 벌며 살고 있다는 신기함,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 특히 돈을 벌면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생활의 자유(부모님이 신경 쓰기에 나는 너무 멀리 있었고, 인터넷도 너무 느렸다)에 취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밤에는 위험하니 신호등 신호를 무시하고 빨간불에도 정차하지 말고 갈 것.

누군가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지는 않는지 백미러로 수시로 확인할 것.

혹시 의심이 된다면, 로터리가 나왔을 때 몇 번 돌다가 지나갈 것. 

가방은 무조건 트렁크에 넣고 운전을 할 것 

해가 진 후 퇴근할 때 지켜야 할 안전 지침들을 새기며 야근하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고, 주말 근무, 한 달에 비행기는 여섯 번 이상, 한 달의 절반을 낯선 호텔방에서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끊임없이 세 섬과 대륙을 오가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20대 중반 내가 선택한 방법은 쇼핑, 카페인, 마사지였다.

1. 쇼핑 : 돈을 벌고 있음을 확인하는 방법 
입어보지도 않고 옷을 구매한 후 쇼핑백에서 꺼내지도 않고 방에 며칠 동안 던져놓기도 하고,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사야만 직성이 풀렸다. 

2. 카페인 : 말짱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했던 방법
특히 지금은 일 년에 한 캔도 마시지 않는 레드불을 그때는 참 많이도 마셨다. 초콜릿과 같이 먹고 보드카에 섞어 마시고... 설탕과 카페인의 향연에 제대로 중독된 시기였다. 

3. 마사지 : 지친 몸을 달래준 방법
주말은 곧 마사지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 때는 안 받아본 마사지가 없을 만큼 마사지를 정말 자주 받으러 다녔다. 숨 쉬기가 불편한만큼 어깨와 목의 통증이 심했고 끊임없이 울리는 핸드폰에 신경 쓰지 않는 한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들의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조금씩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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