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 다니면서 임용 걱정 없이]
서툴렀다. 그렇지만 진심이었다. 첫 담임을 할 때, 첫 1학년 수업을 할 때, 첫 고3 담임을 할 때, 첫 고3 수업을 할 때. 처음이라 어설프고 부족해보였지만, 아이들을 위한 마음은 진심이었다. 특히, 고3 담임을 처음 할때는, 내가 입시도 잘 모르고, 수능 수학에 제대로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늘 마음을 졸였다. 그래도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 그 자체는 컸다. 많은 이들이 교사의 '초심'이라고 부르는 그것 말이다. 그 초심이라는 것은 어쩌면, 부족한 내 자신에 대한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고3 담임과 수학 수업을 하다보니, '진심'만으로는 아이들에게 '진심'을 전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지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아이들은 입시가 눈 앞에 있고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보니, '입시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그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삶에 대한 가르침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어쩌면, 이것도 내가 그 관통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 틈을 만드는 것이 '입시에 도움되는' 것들인 것도 같았다.
그래서 '입시에 도움되는' 교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열심이었다. 매년 수십명의 사정관을 만났고, 두꺼운 입시 책자를 정독하고, 수학 인강을 듣고, 수많은 기출문제를 풀었다. 어느덧 고3 담임, 고3 교과 4년차. 이제는 학교를 나가도 억대 연봉은 만들어낼 것 같은 입시 고수가 되었다고 자뻑에 취할 정도가 됐다. '열심'은 '입시에 도움되는' 교사를 만들어냈다. 그만큼, 아이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 수업을 더 많이, 더 집중해서 듣고자 했고, 내 방과후를 찾았고, 내 자료를 받아 싶어했고, 내 상담을 원했다. 그럴 수록 나는 더욱 '열심'일 수 있었고, 이 과정은 더욱 가속화됐다. 수업과 상담에서 나의 존재감과 정체감은 더욱 뚜렷해졌다.
입시 결과가 하나 둘 나오고, 대학을 보내고(아이들이 가는 거지만), 아이들이 졸업을 하면 나의 '열심'의 의미는 아름다운 노을이 어둠으로 바뀌듯 텅 비어버리곤 했다. 노을에 취해있던 나는 어둠을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진심'을 찾아 해메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정말 열심이긴 했는데, 진심이긴 했을까. 열심히 수업한 나 자신을 뿌듯해하고,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 나 자신을 칭찬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의 성장 그 자체를 순수하게 희망했던 진심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을 잃어버렸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나에게 초심은 정말 있긴 했던 걸까?
진심과 열심 사이에서 초심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건지, 초심이 없었던 나를 발견한 건지. 아니면, 나도 열심이 사라지면 진심이 선명해지게 될까? 왜 열심과 진심은 내 안에서 공존하기 힘들까. 공존하고 있는 데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걸까? 어차피, 나는 스스로를 하나의 마음 만으로도 정의하고 정체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둘 다 갖는 데는 애쓰지 않는 걸까? 열심도 진심인데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걸까?
넘어질 뻔 했나 보다. 진심과 열심 사이 어딘가의 초심에서 중심을 잡으려 하고 있다.
교단을 떠날 때, 아둥거리는 지금의 나를 뒤돌아보고 있는 그때의 나는 어떤 표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