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휴먼 디자인]24. 휴먼 디자인 공부의 핵심 요소
휴먼 디자인을 일컬어 흔히 초복잡성과 고 맥락을 지닌 지식이라고 한다.
한 측면에서 보면 휴먼 디자인이 동서양의 학문을 통합적으로 접근한 종합학문이라는 측면서 그렇다. (휴먼 디자인은 양자물리학, 천문학, 생화학, 유전학 등과 같은 최근의 과학적 발견, 그리고 점성학, 힌두 차크라 시스템, 유대교의 카발라, 중국의 주역 등 고대 지혜가 순수하게 통합된 종합학문이다 ( ▶ 함께 보면 좋은 글 : 만다라 휠의 아름다움 - 통합이 가져온 전적으로 새로운 관점)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휴먼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 자체에 대한 측면에서 그렇다. 이는 한 사람의 의식 수준, 학문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 집안 환경, 신념, 가치, 태도 등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든 요소를 말한다. 이것을 맥락(context)이라고 한다.
우리 앞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맥락(context) 내에서 해석된다. 즉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자기의식 수준으로 사건을 해석한다. 휴먼 디자인이나 여타의 지식도 모두 예외는 없다.
휴먼 디자인은 중립적인 '메커니즘' 자체를 말하지만 이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데는 맥락에 따라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게 된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 맥락은 다음의 네 가지다.
첫째, 먼저 의식 수준이다.
이 지구 표면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간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인간은 아니다. 똑같은 사건, 상황도 의식 수준에 따라 해석하는 내용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저마다 서로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누군가에게 '히틀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누군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광기 어린 폭군이라고 대답할 것이고, 누군가는 전체성이 측면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수행한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진리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마다의 층위에 알맞은 저마다의 답을 내놓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진리인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는 진리가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공간에서 서로 마주치면서도 서로 다른 경험을 한다. 우리는 각자 수준에서 각자만의 진실로 이 세상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둘째, 사회적으로 공유된 문화적, 도덕적,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다.
대표적으로 성(sex)에 대한 인식이 적절한 예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에 대한 구구절절한 해석은 아마 필요 없지 않을까 한다. 사실 성 자체에 대해서 옳거나 그른 것, 좋거나 나쁜 것이란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 자체에 대해서 덧씌운 수많은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해석, 판단이 있었을 뿐.
그러한 수많은 해석과 판단은 수치심, 죄책감, 비난과 같은 감정적 고통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곳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도구로 충분히 오랫동안 지긋지긋하게 활용되어오지 않았던가?
셋째. 선입견(편견), 감정이다.
일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타입이기도 한 매니페스터 타입 자체에 대한 일종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매니페스터 타입이 갖고 있는 '닫혀있고 쫓아내는' 아우라와 메커니즘적으로 분출되는 '분노'가 나쁜 것이라는 오랜 편견뿐 아니라, 자라오면서 매니페스터 타입과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부정적 측면 등 총제적 맥락에 기인한다. 같은 방식으로 어린 시절 '집중하고 흡수하는' 뾰족한 아우라를 가진 프로젝터 타입인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겨난 수많은 이벤트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프로젝터 타입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가지게 된다.
어떤 특정한 관계에서 경험했던 특정한 에너지에 대해 성급한 일반화를 하는 일은 우리에게 아주 쉬운 일이다.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는 일들이 우리 삶에 과연 얼마나 많을 런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처럼 일상에서 드러나고 경험했던 여러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던 특질들로 인한 기억은 본성 자체를 필연적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정 반대로 어떤 특질에 대해 긍정적 인상이 남는 경우도 있겠다.)
경험상 선입견이나 묵어버린 감정의 해소는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더라. 그것이 자신에게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넷째. 에고다.
혹자는 의식 성장의 본질이 에고의 소멸이라고 말한다. 무척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에게 에고가 있으므로 의식 성장이 가능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또한 혹자는 의식의 성장이 존재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중에 하나가 '에고'라고 말한다.
동물적이고 난폭한 에고는 이 각박한 물질세계에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도구로 오래도록 그 지위를 굳건히 유지해왔다. 에고가 있음으로 생존이 가능했던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에고가 있음으로 살지 못한다. 에고 때문에 의식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결국 근본적으로 귀결되는 곳은 항상 '태도' 다.
태도는 언제나 핵심 변수가 된다. 이것이 휴먼 디자인 공부와 실험의 진가를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계속 점검해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휴먼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휴먼 디자인은 ‘삶 자체’라는 것, 그렇기에 살아있는 생생한 지식이라는 것. 꼬인 감정을 풀고, 오해를 풀고,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고 그래서 어떠한 편견도 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 이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다는 것. 난폭한 에고란 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길들여서 항복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는 일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라는 것.
나아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듯 느껴지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도 이 모든 기억, 감정, 해석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한결같은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는 것.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내가 내 삶을 오롯이 책임지겠다는 확고한 중심을 잃지 않는 것.
비록 그러한 태도가 사시나무 떨리듯 시시때때로 흔들릴지라도. 다시 한번 그러한 태도를 가져보겠노라고 그 태도를 갖추어 보는 것. 그리고 이것이 거의 모든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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