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이별하는 일 D-4
영국에 오길 잘한 이유를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체 없이 친구라고 대답할 것이다. 진부한 우정 얘기나 얼마나 값진 우정을 갖고 있는지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한국에만 살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은, 집의 기둥 두어 개는 뽑아야 했던 영국에서의 생활을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줬다.
나는 원래 목표 지향적인 데다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짙어 인간관계는 내 주안점이 아니었다. 관계란 같은 목적이 있을 때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라고 믿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크게 애착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영국에 오기 전 까지만 해도 '친구라는 선물'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고,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글은 누군가의 배부른 우정 타령이라 여기며 가볍게 스크롤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해외 생활이라는 게 가만히 존재만 해도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 그런지, 유학을 하면서 처음으로 함께 기대고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타인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죽도록 싫어했었는데 우정이라는 감정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려운 일을 나눌 줄 알게 되고, 내 감정과 경험에 솔직해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현지 언어를 늘리고 싶으면 친구를 사귀라'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듣게 된다. 친구는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말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일단은, 타인을 본인 발전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너무 싫고, 이민자가 빠지기 쉬운 '언어 만능주의'를 정당화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를 사귐으로써 한국어를 배우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언어 교환 밋업에서 만나는 등 언어가 서로를 이어주는 주 매개체인 특수한 상황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나를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 인식해서 동등한 관계를 맺으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도 같은 대접을 해주어야만 마땅하고, 서로 동등한 선상에 서있을 때 상호 교류가 가능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좋은 친구를 만드는 건 같은 국적의 사람이던, 외국인이든 간에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다. 해외 생활을 같이 견딜만한 누군가가 있다는 건, 그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인 해외 생활에서 같이 페이스를 맞춰 함께 뛸 파트너가 있다면 외국 생활은 덜 외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발맞춰서 같이 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인간을 수단으로 보고 접근해서는 어렵다. 득과 실을 따져 만나기 시작한 관계가 진정성 있게 발전하기란 어려우며, 수단으로 인식하고 접근한 관계는 결국에는 흐지부지 해지기 때문이다.
결국에 인간과 인간을 친구로 유지시키는 건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친구란 뭔가를 잘해서 얻는 보상이 아니라 뜻밖에 찾아온 선물 같은 것 아닐까? '빌 게이츠만큼 부자인 친구를 사귀어야겠다!'라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실제로 빌 게이츠와 친구가 될 수는 없듯, '현지 언어를 잘하는 친구를 사귀어야겠다!'라고 마음먹는다고 현지인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는 건 같은 이치처럼 보인다.
유학과 워홀 생활을 뒤돌아 보며 함께해서 즐거웠고, 만날 수 있어서 감사했던 인연은 아무런 목적성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아 두서없이 주절댔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나보다 더 성숙한 관계를 맺고 있을 거라는 걸 알기에, 사실은 미래의 나를 위한 셀프 리마인더의 차원에서 쓰는 글이다. 어디에 있건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자는 마음에서, 지난 4년간 영국에서 내가 온전할 수 있도록 지켜준 내 관계들에 감사한 마음에서 이 글을 쓰고,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