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광장>
4월 27일 금요일 아침 수업을 멈추고 담임반 고3 아이들과 남북 정상회담을 시청했습니다.
연실 아이들 입에서 “와 이거 실화냐?”라는 말과 “쌤 그럼 저희 군대는 안가도 될까요?”라는 말이 터져 나옵니다. 한참을 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라는 물음이 많습니다. 사실 저도 궁금합니다. 과연 우리나라는 38선의 철옹성을 걷어내고 대륙으로 이어지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뭘 어떻게돼, 이제 파주에 땅 사야지!” 웃으며 던진 농담에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습니다. 순식간에 파주 사는 정임이에게 “와! 부럽다.”라는 농담도 스쳐갑니다.
사실 이번주 내내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있었습니다. 심쿵하게 만드는 멋진 문장들이 있었지만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니 이번 월요 편지에서는 최인훈의 <광장>이라는 소설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아마 교과서에서 배우신 분들이 많겠지요.)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은 비롯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인공 이명준이 꿈꾸던 세상은 ‘밀실’과 ‘광장’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을 꿈꿉니다. 여기서 밀실이란 개인적이나 소통이 부재한 남한의 현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광장이란 공동의 이념을 추구하지만 개인의 자유가 부재한 북한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지요. 하지만 둘의 조화를 바라던 명준은 어디에서도 남과 북 어디에서도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결국 “중립국”만을 외치다 인도로 가는 배 위에서 물로 뛰어들지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남한 땅은 참 살만한데 명준에겐 무엇이 그리 문제였을까요? 이전까지 저는 1960년의 엄혹한 시대에 태어난 소설이니 그런가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남북이 손을 맞잡는 순간 제 안에 결여되어 그런 줄도 몰랐던 것들을 비로소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쌀쌀한 얼굴로 허리를 졸라매었던 우리나라의 부자유스러움. 차가운 감촉으로 잡았던 총. 핵이 만들어질 때마다 스미어오던 불안. 그렇습니다.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진정한 자유를 잃고 있었던 겁니다. 만약 이명준이 실제 인물이었다면 남과 북이 만나는 현장을 보고 뭐라고 했을까요? 물론 이제야 만나 대화의 물꼬가 트인 것이지만 남이든 북이든 새로운 희망을 보았을 겁니다. 아마 물로 뛰어드는 결말은 맺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밀실을 허락하는 광장과 광장을 향해 열려있는 밀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4월 27일을 생각합니다. 광장과 밀실이 조화를 이루는 미래에 “이거 실화냐?”라고 말하는 저희 아이들의 자유를 꿈꾸어 봅니다. 무엇이든 소통이 있는 세상은 흐르는 물을 막지 않는 자연스러움 일겁니다. 그리고 그런 자연스러움 속에는 조급하지 않고 성내지 않는 사랑이 가득한 세상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박봉우의 시 <휴전선> 한구절로 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