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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ohn Aug 31. 2018

슈퍼을 되는 법

사장은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모르는 척할 뿐이다.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받는 만큼만 일하면 된다니까, 더 해주면 호구가 된다니까......"


예전의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고용주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시키는 일만 겨우 해내며 시간을 때우곤 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일해 주면 고용주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는데, 받는 만큼만 일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적당히 놀아도 사장은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출장 가는 날을 소풍 가는 날로 착각하던 때였다. 지방으로 혼자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마침 삼촌 회사가 있었다. 일정 중에 삼촌 회사에 방문하는 것으로 스케줄을 짰다.

‘너무 일만 하면 안 될 것 같으니……’

 

삼촌과의 대화 중에 나는 “열심히 일해도 사장이 알아주지 않으니 열심히 일할 필요 없다.” 고 하자 당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삼촌은 나지막이 이렇게 말했다.

 "회사로 돌아가서 열심히 일해, 사장은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알고 있어, 밖에 나가 있어도 사장은 직원이 일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니까"

그때는 꼰대의 잔소리라고 흘려 들었는데, 세월이 더 흘러, 내가 고용주의 입장이 되니 그 말 뜻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사장은 모르는 게 아니었다. 다만 모르는 척할 뿐이었다.”


나는 사장이 된 적은 없지만, 가사 도우미를 고용해본 적이 있다. 확실히 돈을 주는 입장이 되니 고용인(雇傭人)이 대충 일하는지 열심히 일하는지 알 수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와도 누가 보이는 곳만 청소하는지, 구석구석 열심히 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단순 노동이라고 칭하는 가사 도우미 조차 "슈퍼 을"이 있고 "그냥 을" 이 있었다.


대부분의 가사 도우미는 남아 있는 공간에서 청소를 하고 가는 것이 대부분인데, 맘 카페 소개를 통해 알게 된 C는 남 달랐다. C는 우선 정리를 통해서 공간을 만들고 청소를 시작했다. 공간이 넓어지자 C가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집 공간이 훨씬 넓어져 있었다.


다른 사람과 달리, C와는 매주 일정을 잡고 정기적으로 일을 부탁했다.

C는 원래 계약한 청소만 하지 않고 시간이 남으면 시키지 않아도 다른 일도 하고 갔다. 냉장고 청소, 옷장 정리, 밑반찬까지 만들어 놓고 가는 것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표가 나게 많이 일 한날은 원래 주기로 한 금액보다 조금씩 더 챙겨 주었다.  

C는 말을 들어보니, 그녀는 원래 가사 도우미 업체 소속이었지만 고객의 니즈에 맞혀 일을 하다 보니 고객들이 먼저 프리랜서로 일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업체를 통해서 일하면 수수료를 떼고 돈을 많이 못 벌잖아요. 제가 수수료 없이 직접 드릴 테니 프리랜서로 일해 주세요. 일할 곳도 따로 소개해 드릴게요."

C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일할 뿐 아니라, 위치나 고용주의 성향을 보고 본인이 골라가면서 일한다. 거리가 멀거나 성향이 맞지 않는 고용주에게는 시간이 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업체를 통해 만난 K나 P는 일자리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지금도 선뜻 추천을 못해준다.

하지만, 보수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줬던 C는 지인에게 소개도 해줬고, 맘 카페에도 추천의 글을 남겨서 그의 고용에 힘써줬다.


우리는 꼭 고용을 하지 않더라도 돈을 내는 일에는 돈만 한 가치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식당에서 밥을 먹더라도 내가 먹는 음식이 내가 낸 돈의 값어치를 하는지 안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값어치보다 나쁜 품질이면 식당 주인에게 컴플레인을 하거나, 아무 말 없이 다시 방문하지 않는다. 내가 낸 돈의 가치 이상의 만족을 안겨주면 나는 친구들을 데리고 그곳을 재방문한다.  


정리 컨설턴츠로 일하는 K는 가사 도우미로 일을 시작했었다. 가사도우미를 하면서 우선 고객에 니즈에 맞춰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최근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 많고, 정리를 못하면 청소를 해도 표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정리 컨설턴트로 자신의 일을 특화해 나갔다.

그녀는 현재, 가사도우미로 일 했던 것보다 열 배 이상의 부가 가치를 가지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가 말하는 성공 비법은 처음에 고객의 니즈에 맞혀 열심히 일 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되돌아보니 사장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일한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내가 열심히 일하면 덕보는 사장이 아니꼬워했던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까지 손해 본 행동이었다.


받는 만큼만 일해야지 하는 순간,  우리는 절대 고용주를 상대로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


받는 돈 보다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면 우선은 내가 손해 보는 행동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고용인(雇傭人)이 보수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고, 그런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고용주들은 반드시 그들을 가까이하려고 한다.

가까이하려는 "갑"이 많으면 많을수록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이 주도권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내가 고용주를 "이용"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그들도 우리를 "사용"만 하려고 들것이다.


보수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했던 C에게, 최근 가능한 시간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유럽여행을 가야 해서 안된다고 거절한다. 나는 여행 후에 "꼭" 연락 달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어라? 돈을 주는 사람은 분명 나인데 왜 자꾸 와서 일 해 달라고 사정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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