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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ohn Sep 29. 2018

대기업 다니는 당신도 물 경력이라고요?

대기업에 입사하면 제대로 된 경력을 쌓을 줄 알았어요.

당신의 경력은 물 경력입니까? 

"중소기업에 다녀서 물 경력만 쌓고 있다."는 글인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해 줬다. 나는 대기업 다니면 제대로 된 경력을 쌓는 줄 알았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일정 이상 경력을 쌓으면 중소기업 임원으로 쉽게 이직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앞으로 경력이 고민이에요."

호텔에서 조식으로 뷔페를 먹었을 때 일이다. 즉석요리를 만들어 주는 코너에 메인 셰프로 보이는 연륜 있는 셰프와 젊은 셰프의 얘기 소리가 들렸다. 주니어 셰프가 메인 셰프에게 "하는 일이 단순하고 배우는 게 별로 없어서 앞으로가 고민이에요."라고 말하며 고민 상담을 하고 있었다.

거기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호텔인데, 대기업 호텔에서 근무하는 셰프가 경력에 대해 고민하는 것에 나는 상당히 놀랐다.

"계란은 완숙으로 해드릴까요? 반숙으로 해드릴까요?"

그 셰프가 하는 일은 계란 프라이나 오믈렛을 만들거나 우동 면에 육수를 부어서 고객에게 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호텔에 식재료 공급하는 일을 하는 S, 호텔마다 차이가 있지만, 조리된 제품을 공급받는 경우도 많아 생각보다 셰프가 하는 일이 한정적이라고 한다.

그는 우동을 예로 들며, 우동 면과 육수, 고명을 식재료로 납품받기 때문에 셰프는 알맞게 데워서 내어 주는 일만 하면 된다. 내가 갔던 호텔에서도 면과 고명을 담아 건네면 셰프가 알맞게 데워 주었다. 대기업 호텔 경험만으로 백종원 같은 “요리의 대가”가 되기에 부족할 수 있다고 한다.  우동의 고수가 되고 싶으면 면을 직접 만드는 작은 식당에서의 경험이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휴대폰 부서에 일하는 P에게 "대기업에서 퇴직하면 중소기업 임원은 쉽게 되지 않겠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P는 세상모르는 소리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대기업은 업무의 분업화가 잘 되어 있고 부서를 옮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일 이외의 일을 배우기가 쉽지 않다. 중소기업 임원급으로 이직하려면 영업을 잘 하거나,  자기가 사업장을 차릴 수 있어야 하는데 이거 둘 다 쉽지 않다. 다니던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일감을 줄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으면, 이미 대기업 임원이 되었을 것이다. 동종업종의 중소기업을 차리려면 자본도 많이 필요 하지만, 대기업에서 한 부분을 일한 경험으로는 창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P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것이 자신의 분야에서 안정적인 경력을 쌓고, 더 오래 일 할 수 있지 않냐?"라고 되묻는다. 중소기업은 사장과의 관계에 따라 정년을 넘겨서 일할 수 있고, 여러 업무 경험을 통해서 창업이 손쉽지 않냐고 하면서 말이다.  



O는 갓 마흔의 나이에 부장이 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다. 곧 임원이 될 것이라는 우리 모두의 기대와 달리 사십 대 중반에 명예퇴직을 당했다. 조선업에 불황이 불어 닥치자 "사무직군 부장"이 명예퇴직 1순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시스템이 회사를 움직이기 때문에 개인이 능력을 발휘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직급에 이르면 능력보다 사내 인적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일찍 깨달은 바가 있어, O는 일찍부터 자신의 콘텐츠를 키워왔다. 그는 비록 명예퇴직을 당했지만, 퇴직 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연구소 소장이며, 회사를 상대로 컨설팅을 하고, 강연을 하고 있다. 자신이 근무했던 회사의 신입 사원 강의를 나갈 정도로 그의 콘텐츠는 대단하다.


O는, 대기업에 다니는 당신, 회사 일을 잘하고 인정받는 것도 중요 하지만 퇴직 후 인생 준비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 "자신의 콘텐츠"를 꼭 찾아야 한다. 그래야 퇴직 후에 나 하나의 가치로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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