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는 외롭고 돈이 없다.
능력 없는 상사를 해고하지 않는 이유? 에서 능력 없고 아부하는 상사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는 당신이 모르는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를 비난하기에 앞서 무엇이 그를 그 자리에 있게 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도저히 받아 들일수 없다."는 댓글이 달렸는데 대다수 공감을 표했다. 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발암 상사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 그의 별명은 "그가 함께 일하면 없던 병도 생긴다."는 뜻에서 직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와 함께 일한 대다수가 그의 직설적인 어법과 사장을 위한 행동들 때문에 힘들어했으며 몇몇은 퇴사 수순을 밟았다. 나도 사장에게 아부하며 능력도 없어 보이는 그가 싫어서 이직을 준비했었다. 물론, 원하는 곳으로 이직이 되지 않아 그와 공존하는 방법을 수없이 고민했었다.
여러 고민 끝에 해결책을 찾았고, 그는 나의 협력자가 되었다. 그와 협력관계가 되자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고, 곧 부서의 장으로 승진도 했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업무 능력도 중요하지만, 상사의 평가도 중요했다.
상사 덕분에 전 직원 앞에서 업무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장과의 관계도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사장의 신뢰 속에서 일하는 게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일방적으로 지시를 받고 이행하는 구조였는데, 어떤 사안은 사장이 나에게 먼저 의견을 묻는 놀라운 경험도 했다.
그 당시 가장 고민했언던 육아 휴직 문제도 그 덕분에 쉽게 해결되었다. 보통은 회사에서 직원에게 휴직 일정을 통보하는 편이었다. 나는 내가 휴직 일정표를 만들었고 상사의 승인을 거처 사장에게 보고 했다.
" 상사와 의논해서 진행했습니다. 일정표와 스케줄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덕택에 사장의 승인도 한 번에 났다. 회사생활에 있어 메인으로 일하는 것과 발언권이 있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닭게 되었다.
상사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사의 두 가지 특징을 알아야 한다. 상사는 외로운 존재이고, 돈이 없다. 상사가 외로운 존재인 건 알겠는데, 많은 돈을 받는 상사가 돈이 없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나는 신입 사원일 때와는 달리 진급할수록 경조사가 많아져서 쓸 돈이 많아졌다. 아이가 생기니 정작, 나에게 쓸 돈이 없어졌다. 쉽게 마시던 브랜드 커피도 끊었다.
상사는 부양가족이 셋이나 되었다. 상사랑 밥을 먹으면 그가 당연히 돈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가 속으로 부담스러워하는지는 한참 뒤에 알았다.
상사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내가 했던 것은 심플하다. 먼저 다가가서 밥 한번 사기와 차 한번 사기.
나의 사정을 알고 멘토가 "상사에게 밥 한번 사"라는 조언을 주었을 때 상사에게 밥 한번 사는 게 쉬울 것도 같은데 말 꺼내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일단 "제가 차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어렵게 말이 나오자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상사는 부하직원이 차 한잔 대접하는데도 굉장히 고마워했고, 나에 대한 태도가 누그러졌다. 몇 번 이런 일이 있자 그는 나에게 빚쟁이가 된 것처럼 회사 돌아가는 사정도 먼저 이야기해줬다.
"새로 오신 상무님 있잖아, 영업력은 사장이 기대한 만큼은 아닌 것 같아. 얼마 못 버티실 것 같아. 상무님 눈치는 안 봐도 돼."
"이번 일에서 사장님의 방향은 이런 거야.,
"큰일이 터졌을 때는 사장님께 상황만 보고만 하지 말고 해결책을 찾아 함께 보고해."
상사 덕택에 회사 돌아가는 사정에도 밝아졌다. 사내 정치에 직접 뛰어들지 않더라도 사내 이해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가는지 아는 것이 업무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와 관계가 개선되다 보니 내가 먼저 상사를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 그전에는"발암 상사"라고 험담했다면,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상사도 나름 불쌍한 존재구나. 나 같은 부하직원에게 치이고 사장 눈치 보고 그도 고충이 있겠군" 하는 측은한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에게 부하직원이 밥 한번, 차 한번 사준다면 꽤 기특하게 생각되며 굉장히 고마울 것 같다. 세상은 기브앤 테이크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많이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꽤나 이성적인 존재라고 믿고 있지만, 우리가 내리는 대부분의 선택은 감정에 더 많이 개입한다. 같이 실수한 상황이라도 호감 있는 상대에게는 "실수"로 넘기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는 "업무에 집중을 못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연봉이나 승진이 아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상사의 믿음과 신뢰다.
능력 없는 발암 상사라도 조직에서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먼저 다가가자.
발암 상사 밑에서 살아남고 싶은 당신을 위해 책 두 권을 소개하겠다.
못된 상사 밑에서 살아 남기 (마릴린 하이트/2007)
13가지 유형 별로 상사를 파악한 후 유형별 대처 방법을 모은 책이다.
The Toxic boss survival guide(craig chapplow 외/ 2018)
가장 최근에 발간된 발암 상사와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다만, 아직 번역본이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기회 되면 매거진에 올릴 예정이다.
상사는 회사 안에서 우리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건투를 빈다.
사진 출처 : CJ 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