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하는 게 중요할까? 정치력이 중요할까?
나는 회사 다닐 때 항상 궁금했었다. 능력도 없는 상사가 그 많은 돈을 받으며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지를.
"일 잘하는 것보다는 정치력이 중요하다"
라는 말을 사회에서 수없이 들어도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일만 잘하면 되지, 그런 진흙탕 싸움에 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파워게임에 무심했다가 조직에서 배척당하거나 상처 받고 밀려나기 일쑤였다.
'차라리 수평적인 분위기의 외국계 기업이 낫겠다.'라고 마음먹고 조사를 하다가 제스프리 한국 지사장을 지낸 김희정의 자서전을 읽게 되었다.
그녀가 말하는 외국 기업들은 겉에서 볼 때는 수평적인 분위기로 보이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내 정치로부터 절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상사에게 "왜 말을 바꾸냐고? 왜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냐고?"라고 대들었다가 외국인 직원들이 아무도 내편을 들어주지 않아서 혼자서 바보가 되었다고 한다. 한술 더 떠서 한 직원은 "상사는 절대 그런 말을 한적 없다."고 상사를 옹호했다고 한다.
"외국, 특히 서양인들은 한국인보다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자신이 아는 한 서양인들은 제도와 서열에 절대복종한다."는 글을 읽고 외국계 기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접은 기억이 있다.
또한 그녀는, 조직에서 잘 적응하려면 조직에 적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승진의 기회가 더 많이 돌아오고, 뛰어난 정치력을 가진 사람이 뛰어난 업무능력을 가진 부하를 거느리며 그들의 모자라는 업무 능력을 보충해 주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능력 없는 상사를 해고하지 않는 사장의 속내를 한 책에서 찾았다.
모두에게 폭탄으로 보이는 직원이 회사에서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이유를 같은 직원의 눈높이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그 폭탄이 있음으로써 그 아래에 있는 직원들이 오히려 하나로 뭉치고 있다는 것, 그 폭탄은 지나치게 잘 나가지만 언제든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누군가의 백업용이라는 것, 최소한 그 폭탄은 일의 속도가 느리더라도 회사가 휘청거리는 위기의 순간에 끝까지 회사를 지킨 다는 것, 그 폭탄은 오히려 그 많은 단점으로 인해 자신을 숙이고 회사에 충성을 다할 것이라는 판단을 어떻게 사장이 아닌 동료들이 할 수 있겠는가?
윤용인의 『사장의 본심』
세월이 흘러, 나도 관리자 입장이 되어 사장의 입장과 직원의 입장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입장이 되자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큰 회사, 작은 회사 또는 외국계 기업을 포함해서 어떤 조직에서든지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 회사는 조직이고 조직은 룰을 따르는 사람을 원한다.
조직은 "변화"나 "혁신"의 가치를 내거는 것 같지만 그 밑바탕에 "생존"을 깔고 있다. 기업이 생존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인재는 "로열티"를 가진 직원이다. 회사 오너들은 믿었던 직원에게 한두 번 이상씩은 뒤통수를 맡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곤혹을 치르고 나면 무조건 충성스러운 직원을 원한다고 한다.
당신이 무능한 상사를 대신해서 회사 때문에 과도하게 고민하지 말라. 그것은 당신과 같은 시절을 다 거친 임원진들이 이미 충분히 하고 있다. 상사가 무능하게 보여도 그를 비난하기에 앞서 무엇이 그를 그 자리에 있게 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을 무조건 상사나 조직에 아부 하거나 YES맨이 되어야 한다고 알아듣지 않았으면 한다. 사내 정치나 파워게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돌아가는 사정은 훤히 보고 있어야 한다. 누가 어떻게 줄을 서고 어떤 일들이 내 뒤에서 진행되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을 상사와 조직을 우습게 생각하다가 집에서 백수로 뒹굴고 있었던 예전의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사진출처:조선 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