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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혁재 Jun 27. 2022

주 4.5일제 하고있습니다

회사에는 비밀입니다만

우리 회사는 올해 초부터 주 4.5일제를 비공식적으로 채택했다. 비공식 4.5일 근무제도는 대체 뭐란 말인가?


시작은 근무 만족도 설문조사 결과였다. 예전 글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는데, 우리 회사는 분기마다 전 세계 직원들을 대상으로 근무 만족도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광범위하고 세세하게 공유한다. 그래서 분기별로 직원들의 만족도가 다각도에서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쉽게 추적할 수 있다. 아무튼 작년 마지막 설문조사 결과 다수 직원들이 코로나가 야기한 재택근무, 그리고 그에 따른 수많은 원격 Zoom 회의로 인해서 개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우리 CEO와 인사책임자는 한 가지 새로운 업무체계를 실험해 보기로 했고, 이게 바로 금요일 오후 회의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었다. 회의 종류에 상관없이, 직급에 상관없이 이제 금요일 오후에 미팅을 잡으면 안 된다는 것. 하루 종일 회의만 많이 들락날락하다가 정작 자기 일은 처리할 시간을 갖지 못해 야근을 해본 경험은 다들 있을 텐데, 바로 이런 직원들을 위해 금요일 오후를 텅 비워주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이 새로운 도전을 소개하면서 우리 CEO는 밀린 일뿐만 아니라 커리어 발전을 위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으로 활용해 주길 당부했다. 그때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와우, 이제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이다!

그렇게 2022년부터 나는 4.5일제에 발을 담그고 말았다. 문제는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한쪽으로만 흐른다는 엔트로피처럼 업무량도 역행은 불가하다. 즉, 이제 5일 근무제인 회사로 이직할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100% 재택근무를 보장하지 않는 회사도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아웃인데, 그럼 정말이지 남는 회사가 많지 않다. 흠, 사실은 이게 우리 CEO의 큰 그림이었으려나?


이런 글을 읽으면 부장님을 포함한 윗분(?)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역시 직원들 재택근무시키거나 주 4일제 같은 거 하면 놀 생각만 하지 일은 안 한다고. 더 빡시게(?) 굴려야 된다고. 사실 이건 사람-by-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입장에서 변명을 조금 해보자면 이렇다.


우선, 금요일 오후부터 놀 생각이기 때문에 그 주에 마쳐야 할 일이 있으면 알아서 목요일 저녁에 보충해서 일하게 된다. 둘째로 정말 금요일 오후에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당연히 한다. 다만 그렇게 미리 예상치 못한 일이 갑자기 내 앞에 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실 이게 재택근무의 최대 장점 중 하나다. 서로 떨어져 일하로 눈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업무 스케줄을 존중해 미리미리 일정을 짜고 약속을 잡을 수밖에 없다). 결국 4.5일제로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실제 업무시간이 줄었다기보다는 금요일 오후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더 큰 자유가 주어졌다고 보는 편이 더 알맞다.


실은 여기서 0.5일이 더 줄어 주 4일제가 된다고 해서 내 업무방식이나 시간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어차피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닌 이상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내 월급만큼만 일한다는 (더 하면 큰 손해다) 책임감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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