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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다 Jul 24. 2020

뱃멀미를 극복하고 싶어서

왜 나는 그동안 멀미약을 생각하지 않았나

오래전부터 배낚시에 두려움이 있었다. 낚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배 타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뱃멀미 때문이다.


친구·지인들과의 모임이 몇 개 있는데, 각 모임에는 때마다 다른 관심거리가 나타나곤 했다. 대학 동기들 중심으로 구성된 이 모임의 최근 관심사는 배낚시였다. 시작은 낚시에 푹 빠져 사는 친구의 경험담이었다. 모임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친구였는데 모이기만 하면 낚시 이야기였다.

  

“너희들이 손맛을 아느냐” “낚시에는 인생이 있다” “사 먹으면 비싼 회를 (직접 잡아) 실컷 먹고 있다”

  

그러다가 모임 자리에서 그 친구가 이야기를 꺼냈다. 이렇게 만나서 식사하고 술 한잔 하는 것도 좋은데 다른 무엇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낚시를 함께 가자는 이야기였다.


나쁠 것은 없었다. 모임의 친구들 모두 유흥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성격인지라 만나면 밥 먹고 커피 마시거나, 기껏 삼겹살에 소맥 마시는 게 전부인 30대 직장인들이었다. 대화의 주제라고 해봐야 육아, 집값, 회사 이야기가 전부였고, 희망이 있다면 로또복권이나 연금복권에 당첨되는 것이었다. 새로움이 필요했다. 이왕이면 생산적이고 건전한 활동이... 


‘낚시친구’의 공격적인 설득과 나머지 친구들의 무료한 일상은 서로의 목적을 이루는 충분한 보완이었다. 일 처리는 빠르게 진행됐다. 친구들 모두 아내로부터 낚시여행 ‘허가’를 받았고 각자의 회사에는 연차(연가)를 냈다. 일이 잘 풀리려니 한 명의 불참자 없이 모두 함께하게 됐다. 시간 맞추기 힘든 30대 직장인들이었다. 목요일 퇴근 후 늦은 밤 서울에서 출발해 금요일 이른 아침 출항하는 스케줄. 준비는 순조로웠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텐션이 끌어 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뱃멀미에 대한 공포였다. 수년 전 직장 동료들과 배낚시를 간 적 있었는데 심하게 멀미한 경험이 있었다. 낚시는커녕 선장실 안쪽 아래 작은 공간에 누워서 잠만 자다가 끝났던 경험이었다. 당시 배낚시에 든 비용이 대략 인당 15만 원은 됐으니, 좁은 창고에서 불편한 잠을 청하기 위해 15만 원을 지불한 셈이다.


또 최근 업무차 방문한 해군의 상륙함에서 긴 시간을 보낸 적 있었는데, 뱃멀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양해를 구하고 사관실 침대에 누워있던 기억도 떠올랐다. 과연 내가 배낚시를 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선뜻 배낚시 참가를 결정한 이유는 배낚시에 대한 호기심뿐만 아니라 뱃멀미를 극복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 때문이었다.


배낚시까지 일주일이 남은 시점, 먼저 뱃멀미 약부터 찾아봤다. 마시는 약, 붙이는 약, 알약과 가루약 등 종류가 다양했다. 중요한 것은 성분이었다. 성분은 크게 항히스타민제와 스코폴라민제 두 가지로 나뉘었다. 조금만 검색해도 각 성분의 효과는 쉽게 알 수 있었다. 항히스타민제는 뇌 활성화를 막아 각성 상태를 방지하며 졸음을 유도하고, 스코폴라민은 부교감신경의 흥분을 억제해 울렁거림과 구토를 막는다.


시중에 판매하는 멀미약은 대체로 이 두 가지 요소를 조합해 제조됐으며, 약마다 성분 차이가 조금씩 있었다. 멀미약이라고 하면 ‘키미테’만 알고 있던 나에게 수많은 종류의 멀미약은 놀라움이었다. 마시는 약만 해도 크게 ‘이지롱’ ‘뱅드롱’ ‘토스롱’이 있었는데 각각의 성분이 조금씩 달라서 나에게 조금 더 맞는 약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심리적·체력적인 노력이 바탕된다면 어떤 약을 먹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내가 고른 멀미약은 ‘메카인’이라는 알약이었다. 처음 약국에 갔을 때 간편하게 마시면 되는 토스롱을 구매할 생각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공부한 바로는 울렁거림이 심한 나에게 이 약이 알맞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약국에서 멀미약을 말하자 약사님이 건네준 것은 메카인이었다. 몇 가지 설명을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수일에 걸쳐 멀미약에 대해 샅샅이 공부하며 고른 멀미약이 있었는데, 정작 약사님의 한마디에 바뀌어 버렸다.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을 믿는다. 내가 아무리 인터넷으로 몇 날 며칠을 찾아본다고 한들 오랜 시간 학습과 경력을 쌓은 전문가를 이길 수는 없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제까지 배를 타면서 왜 멀미약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자신에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애초에 뱃멀미를 극복해야겠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당연한 뱃멀미에 두려움과 공포를 가졌던 지난날이 허무했다. 아침 6시에 출항해 오후 4시에 귀항할 때까지 아무런 위험신호 없이 무사히 배낚시를 즐겼다.


여기에는 약물 외의 노력도 한몫했다. 뱃멀미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에 아주 단기적으로라도 체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낚시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퇴근후 빠른 걸음으로 걸어 집에 왔다. 건물에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오르내렸다. 또 사흘 전부터는 소주 한 잔 맥주 한 모금하지 않았고,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며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했다. 또 속이 비워지면 좋지 않다기에 배를 타기 전부터 탄 이후에도 틈틈이 간식을 챙겼다. 낚시 중에는 가까운 것에 시선을 집중하기보다 멀리 바라봤고, 혹시라도 멀미 신호가 오면 조타실 안쪽에 있는 공간에 누워 잠을 청하면 될 것이라며 마음을 편히 가졌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멀미에 대한 극도의 예민한 감정이 만든 방어활동이었다.


배낚시로 손맛을 느끼고 물고기를 잡은 점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보다 뱃멀미 없이 온전하게 그 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보냈다는 점은 즐거움 이상의 뿌듯함과 기쁨이었다. 여차하면 오지도 않는 잠을 계속 청하며 출렁거리는 바다만 온몸으로 느낄 뻔했는데, 여러 노력이 모여 여름 바다의 아름다움을 배경 삼아 일상의 유쾌한 한 컷을 만들었다. 


한 번의 승리가 끝은 아닐 테다. 다시 배를 탔을 때 뱃멀미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방심하는 순간 좋았던 이번의 기억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값진 승리는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또 좋은 기억은 계속 유지해야 한다. 그리하면 결국 내 것이 될 것이다. 여전히 뱃멀미는 두렵다. 하지만 해볼 만하다. 그를 이겨낸 기억은 무의식 속에 남아 극복을 지배할 테니까.


뱃멀미를 하지 않음으로 배 타는 재미도 이제서 알게 됐다. 커다란 낚시배에 달랑 7명이 예약돼, 좌우편에 나눠 각자 3~4m씩은 떨어져 낚시했다.



일본 멀미약 아네롱     

처음 뱃멀미 약을 찾아보면서 일본 멀미약 ‘아네롱’에 대한 많은 호평을 마주할 수 있었다. 후기 글들이 상당했다. 뱃멀미에 이게 최고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사실 더 알아볼 것도 없이 아네롱을 해외직구로 구매했었다. 

일본 제품 구매가 마음에 크게 걸렸지만, 뱃멀미 공포를 가진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네롱은 내게 필수 의약품 그 이상·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월요일에 주문한 약은 금요일이 되어서 도착했고, 아네롱을 손에 쥐어보지도 못한 채 낚시를 떠났다. 허탈한 마음을 부여잡고 정작 내가 먹은 멀미약은 근처 약국에서 약사님이 추천한 제품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멀미를 하지 않았는데, 심리적인 이유였는지 아니면 아네롱만큼 그보다 더 국산 멀미약도 충분한 효과가 있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둘 모두였을지도. 아네롱의 후기를 남길 기회가 사라진 데에 아쉬움은 없다. 

뒤늦게 도착한 아네롱을 사용할 일이 앞으로 있을지 모르겠으나, 배낚시를 또 간다고 해도 내가 경험한 국산 멀미약을 다시 찾을 것 같다. 일본 제품 사용을 꺼리는 이유도 있지만, 좋은 기억을 가진 것에 거부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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