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물과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물을 무서워한다. 친구들과 해변에 놀러 가도 모래사장에 돗자리 펴고 앉아 짐을 지키거나 흐뭇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기 일쑤였다. 혹여라도, 만에 하나, 어쩔 수 없이. 바다에 들어간다면 최소한 내 두발이 바닥에 닿아야 했고, 물이 심장 위로 올라오는 깊이에 도달하면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건 오래된 계획이었다. 수영을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물 공포’를 극복하고 싶었다. 세상 살면서 물에 들어갈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바다에 가고, 워터파크를 가며, 계곡과 호텔 수영장을 간다. 언제까지 “나는 괜찮다”며 물 밖에서 외로이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도 즐기고 싶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생존수영이라고 해서 위기상황에 대비한 최소한의 기술을 배우지 않던가. 조금 더 즐겁게 보내고 또 안전하게 삶을 유용하기 위해 더 늦기 전에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게 지난해 10월 말의 결심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가까이 구민체육센터가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데 저녁 식사를 마치고 슬슬 걸어가면 되는 거리였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9시부터 50분간 진행되는 초급반에 등록했다.
사실 지역주민을 위한 체육센터는 등록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마다 정원이 있어서 누구 한 명 빠져야 새로운 사람을 받는 방식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신규회원 등록 첫날 오픈 시간에 맞춰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 기존 회원의 결원 자리가 있어 신속하게 등록했다. 초급반이었기 때문에 상급반으로 이동한 회원의 빈자리였을 수도 있고, 혹은 수영을 포기한 누군가의 자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업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수영복과 수영모, 수경을 샀다.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한 것도 아닌데 생각보다 비용이 꽤 들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섰다. 30대 후반인 내 나이 때문이었다. 창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배움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 계속 상기하며 등록은 했지만 막상 개강일이 다가오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초급반 수강생들은 성별도 연령도 다양했다. 20~30대가 절반 이상이었고,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60대 어르신들도 있었다. 수영은 모두 처음이었고, 어색한 기분은 서로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수영을 했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았고, 출장이나 야근도 피할 수 있는 경우 다른 날로 조정했다. 삶의 1순위는 수영이었다. 처음에는 물속에 머리를 담그는 일도 쉽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겠다고 그려지는데 막상 행동하려니 덜컥 겁이 났다. 이게 뭐라고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심호흡하며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머리를 물속에 넣었더랬다.
한 달이 지나자 제법 물과 친해졌다. 그 사이 초급반 누군가는 중급반으로 ‘월반’ 했지만 크게 부럽진 않았다. 이곳 센터의 수영장은 총 8개 레인이 있는데 중급반과 고급반이 맞춰 나눠 쓰고 있다. 초급반은 그 옆에 별도 마련된 수영장에서 강습이 이뤄졌다. 길이가 절반 정도로 짧았고 깊이도 허리 정도까지 밖에 되지 않는다. 초급반 수강생들에게는 어서 저곳 ‘진짜 수영장’으로 ‘진출’하는 게 유일한 목표였다.
하지만 내게 수영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물속에서 두려움을 이겨내며 움직인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발전이었다. 저쪽 수영장으로 갈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한 두 달 더 있으면서 물에 대한 무서움을 완전히 이겨내고 싶었다. (물론 강사님의 생각은 달랐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것이 느냐며 분발을 촉구했다.)
수영 첫 달 생각대로 되지 않고 겁이 났을 땐 괜히 수영을 시작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달에는 등록을 포기할까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이제 겨우 한 달 해놓고 그만둘 순 없었다. 여기서 그만 두면 앞으로 다시는 물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롭고 단단한 결심이 아까웠다. 꾸역꾸역 매주 두 번 센터를 갔고, 강사님의 애정이 담긴 꾸중을 들으면서 계속 연습했다.
벽을 붙잡고 몸을 띄어 킥 연습하고, 킥판을 잡고 왔다 갔다 하며 발차기했다. 또 앞으로 나아가면서 옆으로 고개 들어 호흡하는 방법도 배웠다. 출퇴근길에는 길을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음파음파’ 입으로 호흡하는 연습을 했다. 틈틈이 유튜브로 수영 초보를 위한 영상을 찾아보고, 머릿속으로 동작을 그리며 가상의 연습도 했다. 주말에는 자율 수영 시간이 있어서 혼자 복습도 했다.
(실력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수영이 늘자 재미도 붙었다. 자신감도 조금씩 생겼다. 무엇보다 물에 대한 무서움이 확실히 줄었다. 컴컴한 두려움이 조금씩 걷히자 밝은 빛이 슬며시 눈에 들어왔다. 눈부신 빛은 아직 아니지만 저기 먼 곳에 빛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점은 큰 성장이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잘하진 못해도 킥판 없이 물에 떠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올해 1월의 일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커지면서 구민체육센터의 운영이 중단됐다. 예방적 차원이었다. 기한도 없었다. 추후 공지. 2월이 지나고 3월이 지나며, 중단 6개월이 지났다. 봄과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재개장에 대한 소식은 깜깜무소식이다.
어쩔 수 없는 운영 중단을 받아들이며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기를 바라지만, 재개장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언제쯤 나는 다시 수영할 수 있을까...
수영을 시작하기 전에는 수영을 못해도 사는데 큰 불편함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랬다. 난 원래 수영을 못해. 나는 어릴 때부터 물을 무서워했어. 그냥 지금이 좋아...
하지만 수영은 내게 새로운 일상을 만들었다. 생각의 변화를 갖게 해 줬다. 지금이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 수영을 못하는 것보다 두려움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게 더 부끄럽잖아.
언젠가 수영이 능숙해지면 나의 세상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수영을 못해도 다른 즐거움을 찾으면 될 일이지만, 수영으로 인해 할 수 있는 놀이가 늘어날 것이고 덩달아 즐거움과 만족감도 커질 것이다.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더욱 노력해 완벽함을 만드는 노력도 재미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분야에 도전해 실력이 쭉쭉 느는 것을 체감하는 기분은 훨씬 더 큰 성취감을 준다.
센터는 잠시 멈춤이지만 나의 수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