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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다 Nov 09. 2020

깔깔이의 계절이 돌아왔다

언제까지 이 옷을 입을 것인가?

적어도 집에서만큼은 편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나의 신조는 얼마 전까지도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을 만들었다. 그러던 것이 11월이 되고, 집 안 공기가 싸늘해짐을 느끼며 슬슬 겨울 츄리닝을 꺼내게 됐다. 보일러를 켜고 사는 것이 아니기에 짧은 옷으로 더 버텼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그냥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같은 때 감기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 객기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법.


겨울에는 역시 깔깔이, 이만큼 편한 옷이 또 있을까.


겨울 옷들을 옷장에서 본격 개장?하며 깔깔이도 함께 꺼내 입었다. 역시나 내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은 여전하다. 겨울이니까 깔깔이. 라는 공식은 올해도 계속 이어지는 듯하다. 군대를 전역한 지 10년도 훨씬 지났는데도 말이다. 예비군도 끝나고 전투복과 전투화도 한참 전에 정리한 마당에 이 깔깔이는 십 수년 전 군 시절 보급받은 이후 내 겨울옷들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사실 이 옷의 보온 효과가 (시중 기능성 의류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엄청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디자인이 (내 눈에는)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겨울만 되면 이 옷을 찾아 입는다.


엄마는 “제발 그 옷 좀 그만 입으라”라고 볼 때마다 다그치지만, 이 깔깔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내 겨울을 책임져 준 녀석을 쉽게 버릴 순 없다. 내게 오래된 추억과 기나긴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옷이 이것 말고 또 무엇이 남아 있을까. 사실 이만큼 집에서 대충 막 입어도 편한 옷이 없기도 하다.


물론 깔깔이를 입고서 바깥을, 동네를 다니지는 못한다. 그것까지는 차마 못 하겠다. 솔직히 (이래저래) 창피함이 든다. 이중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냥 이렇게 집에서 어느 누구의 눈치없이 생활용으로 입기에 제격인 정도.


가끔 동네 고물상을 지나가면 일하시는 할아버지 중에 깔깔이를 입은 분을 볼 때가 있다. “저 어르신도 깔깔이를 유용하게 중용하시는구나.” 뭔가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 깔깔이를 이제 그만 입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 옷을 입을지는 모르겠다. 어찌 됐든 이번 겨울도 잘 부탁한다.


   


방상내피 변천과정. 왼쪽부터 2011년 이전, 2011~2018년, 2018년 이후 (c)국방기술품질원


깔깔이에 대하여

 

깔깔이의 공식 명칭은 ‘방상내피’다. 방한복 상의 내피로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을 넣고 누벼 보온성을 강화했다. 깔깔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940~50년대 보급 초기 방상내피의 컬러가 카키색이었다는 데에서 ‘칼칼이’라고 불리다가 ‘깔깔이’로 변했다는 설.     

 

다른 하나는 초기 방상내피의 옷감 질이 좋지 않아 겉면이 이 빠진 칼날 혹은 면도날처럼 거칠다고 해서 ‘칼칼이’로 불리다가 ‘깔깔이’로 이어졌다는 설이다. 울 원단을 내피의 안감으로 사용했는데, 원단 특성상 피부에 닿는 느낌이 까칠까칠했기 때문이다.      


현재 보급하는 깔깔이는 폴리에스터 재질로 제작된다. 꾸준히 촉감을 개선하고 보온성과 활동성도 높이고 있다. 특히 누빔 기법을 이용해 만들어져 얇고 가벼운데도 보온성이 좋다. 누빔은 퀼팅이라고도 하는데 안감과 겉감 사이에 솜털, 우레탄폼 등을 넣어서 마름모꼴의 다이아몬드 무늬가 생기도록 하는 방법이다.


2011년 이전에는 노란색의 깔깔이가 보급되다가 이후 고동색으로 바뀌며 박음질 방식과 내부 소재가 달라졌다. 이전보다 솜은 얇아지고 허리 고무줄이 사라졌다. 대신 옷깃이 생겨 지퍼를 끝까지 올리면 목 부분까지 보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다가 2018년부터는 디지털무늬 깔깔이가 생산·보급되고 있다. 기능성을 더 강화했고, 박음질 방식은 다시 다이아몬드 퀼팅으로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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