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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플 Jul 07. 2023

에고라는 적

강릉의 어느 카페에서


지금 이 곳은 여느 카페와 다르다. 50-60년대의 음악이 유지되고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장식품들이 많다. 자신의 취향과 기억을 지켜온 공간에는 그 사람의 에고에 공감하는 사람만이 올 수 있기에 포토존이 있는 카페보다 사람 역시 없다시피 한다. 자신, 즉 에고(Ego)를 지키면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행복도, 꿈도 에고를 컨트롤 할 수 있을 때만 이룰 수 있다.


에고 : 나를 뜻하는 그리스어 (Εγώ)에서 온 말. 자아, 자부심, 자존심을 뜻하는 영단어


라이언 홀리데이의 ‘에고라는 적’ 에서는 ‘에고’를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인생에서 진정한 성공을 거두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만족할 줄 모르는 우리의 에고이다.​
에고는 이 모든 단계에서 우리와 함께하는 적이다. ​
에고를 다스리는 일은 인생을 위한 기초공사 와도 같다.

- 에고라는 적 -


작은 성공과 실패들이 있겠지만, 아직 인생의 대의를 이루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에고(Ego)라는 것이 불쑥 튀어나와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 계획이 정말 간절하지 않았던 것인지, 나의 에고가 지나치게 강해서 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둘 다 인 것은 알겠다.


그렇다고 에고라는 개념이 사람에게 반드시 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서 유일하게 변화시킬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에고이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지 못하면 위기가 올 때 상황에 휩쓸리거나 상황 판단력이 나빠질 수 있다. 1년 전 내가 지키고 싶은 3가지 개념이 있었다. 성과, 균형, 포용. 균형을 잃고 성과에 집착하는 순간 포용이 바닥이 났다.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했고,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욕심도 과했다. 거기서 “스스로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고 있는지.” “자신과 타인의 관계는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내 꿈과 미래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즉, 현재의 에고를 알고, 핸들링 하지 못하니 파도와 같이 주변에 휩쓸리기 바빴다. 균형에 실패한 것이다.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중요한 일을 할 것인가' 인생을 살다 보면 분명히 이 갈림길에 설 것이다.
존재할 것이냐 행동할 것이냐, 자네는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

- 에고라는 적 -


위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중요한 일’이다. 거창하게 말해 ‘대의’라고 하자. 나는 결국 ‘대의’와 에고의 싸움에서 ‘대의’를 승리시키고, 승리를 통해 에고를 더 단단히 만들고 싶다는, 삶의 미션이 있음을 깨달았다. ‘대의’의 달성으로서 에고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따금의 목표들, 굳이 ‘대의’에 빗대자면 ‘소의’와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그 ‘소의’들은 결국 에고에게 지고 말았다. 에고에 질 때마다 패배감에 휩싸이곤 한다. 한편 에고의 열정이 있어야만 ‘소의’들을 달성해나갈 수 있었다. 모든 우선순위에 에고가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의’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는가? 그것도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갈대와 같고, 가변적이더라. ‘소의’의 시작이 거창하지 않아도 몇 년 간 변화하지 않을 수 있고, 거창했다고 몇 달안에 변화하지 않는 것도 아니더라. 그 가변성이 실패로 귀결되는 역할을 맡을 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면에서는 폭력적으로 포용을 하지 못하고 마음이 변해버린 상대방을 비난했다. 그러나 내가 변하는 입장이 되니 알겠다. 나의 결심이 진심이었더라도 ‘소의’에 불과했음을. 누군가에게 모든 에고를 죽여야 하는 ‘대의’가 다른 사람에게는 소중한 에고를 차마 죽일 수 없는 ‘소의’ 일 수 있음을.  


같은 시련을 겪고도 어떤 사람들은 겸손함을 배우고 어떤 사람들은 에고를 선택한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어떤 사람이 되겠는가.
우리가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우리 앞에는 몇 개의 선택지가 놓인다. 계속 부정적인 결과를 내는 이 상황을 나를 비롯해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 실패를 인정하고 한차례의 실패로 매듭을 짓고서 다음을 기약할 것인가?​​​

- 에고라는 적 -


여러개의 에고 중 나의 가장 큰 적은 ‘포용력’이다. ‘포용하지 못하는 마음’조차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용의 뜻 :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

포용의 시작은 나의 시선을 남의 시선으로 전환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 시선이 나의 이해관계와 상반되고, 심지어 나를 공격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이라도 그 사람 입장에서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생각하는 것. ‘착하다’ 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인생이 여유롭다면 착하게 사는 것은 쉽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용’을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의 ‘에고’를 일정 부분 포기하고 타인의 ‘에고’를 받아들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전국 통일의 염원을 이루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그린 <대망>에서는 다음과 같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말하고 있다.


이에야스 한평생의 간절한 소망은 오로지 싸움을 멈추고 평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모두 신불의 자식, 태양의 귀한 자식이다. 라는 이치를 깨달으면, 싸움이란 하늘에 대한 어리석은 모반이라는 것을 깨탈을 터. 사람은 서로 죽이고 죽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서로 정답게 돕고 격려하면서 번영하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는 악마가 고개를 쳐들었다며 깊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세상의 화목이라는 열매는 하루 아침에 열리는 게 아니다. 그 아래 깊은 자비의 뿌리가 없으면 안된다. 늘 실력을 기르고, ‘물 새는 배, 불 타는 집’ 안에 들어앉은 사람처럼 모든 일에 치밀하게 두루 신경쓰며 신불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온갖 일에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의 부하들은 이에야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주군은 처음에 용감한 무장이었다. 그러더니 사려깊은 무장이 되고, 요즘은 부처님 길을 걷는 분이 되셨다. 부처님 길은 사람을 베는 게 아니고, 싸움을 잘 하는 것도 아니며, 한 사람이라도 많이 살리는 것, 한 사람이라도 많이 키우는 것이라며, 강한 것만이 무장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이에야스의 관찰에 의하면 예로부터 싸움에 진 편이 멸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긴 편 역시 머지않아 반드시 파멸의 길로 접어들고 만다. 승리한 뒤에 자만심에 빠지는 것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버릇이어서, 인간은 이겼을 때 어째서 이겼는지 살피는 일을 게을리한다. 그리하여 결국 노부나가도, 히데요시도 실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엄격한 반성을 한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인간의 생에에는 중대한 위기가 세 번 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될 무렵의 무분별한 색정,
그리고 장년기의 혈기만 믿는 투쟁심,
불혹을 넘어서 자신이 이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자만심.”

그 깨달음으로 자신을 더욱 갈고 닦으며, ‘인생은 음미하는 것.’ —— 음미하면서 현실을 처리해 나가는 것이 살아 있는 정치라고 여겼다.

(중략)

“인간에게 나의 것이란 하나도 없다. 내 몸도, 마음도, 물이며 빛이며 공기처럼 금은재화는 물론 내 아들, 내 손자까지 무엇하나 내 소유인 것은 없다. 이 세상 만물은 누구의 것도 아닌 모두의 것, 그 모두의 것을 신불로부터 잠시 맡아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맡았던 것을 너에게 건네기는 하나 네 것이 아니니 결코 사사로이 사용하면 안된다.”

- 대망 -


변화가 빠르고 소유의 개념이 강력한 현대사회에서 자아를 한편에 숨겨두고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휩쓸리는 파도 안에서  것을 지켜야 하고, 때로는  것의 범위를 늘리는 것이 성공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기는 이다. 먼저 이기지 않으면  영역을 빼앗기고, 패배감이 들면 조금이라도 자존심을 부려야 스스로 에고의 속이 시원하다.  역시 그런식의 사고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다. 사실,  상처조차 이기지 못한 나의 에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짧지만) 지금까지의 삶에서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지는 것’ 이었다. 상대방이 자신의 에고를 포기하고 나를 포용할 때 마음은 죄책감과 감사함으로 물든다.


“부하란 녹으로 붙들어도 안되고, 가까이해서도 안되며, 화나게 해서도 안되고, 방심시켜서도 안된다. 부하란 대장의 인품에 반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고, 다른 말로 심복이라고도 하는데, 심복이란 사리를 초월한 데서 생겨난다. 감탄시키고 감탄시킴으로서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게 만들어가는 거야. 체력도 가신보다 뛰어나야 한다. 참을성과 아끼는 것도 가신보다 더하고, 생각하는 바도 가신을 넘어서야 겨우 가신들이 너한테 반하고 존경하며 떠나지 않지.”

- 대망 -


앞서 이에야스가 말한 혈기만 믿는 투쟁심과 이제 자신이 완성되었다는 자만심이 여전히 나에게 존재한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상대방을 위한 시간보다 스스로의 에고가 불쑥 튀어나올 때도 많다. 그런 혈기왕성함이 장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살면서 꽤 큰 부메랑이 된다고 느낀다.


권력 쟁탈과 관련된 성공에는 항상 권한과 통제, 그리고 집착이 뒤따른다. 자기의 힘(권력)을 과시하는 모습은 주변에서 매우 자주 볼 수 있다.​
통제는 자기 방식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 에고라는 적 -


권력의 과시는 역사적으로 실패로 귀결될 때가 많았다. 때로는 그런 과시가 무언가를 이루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더 끌리는 삶의 방식은 ‘대의’의 달성이다. 이를 테면 사마의나 이에야스 같은 부류다. 뜨거운 추진력과 혈기왕성함은 노력하지 않아도 나의 무의식에서 발산된다. 그러나 이 뜨거움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때로 냉철함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제는 정말 알아야 한다. 나는 차분함, 냉정함, 냉철함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일종의 균형이 없으면 불씨가 급격하게 죽는 사람이다.


냉철함은 우리 성공에 균형을 잡아주는 평행추와 같다.

우리는 냉철함을 유지하고 탐욕과 집착을 삼가며 언제나 겸손하고 늘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기 주변에 더 큰 세상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권력이 스스로를 환상의 빠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자기가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 된다.​​

- 에고라는 적 -


내가 가진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항시 인지하고, 감사하며 타인의 시선으로 가는 것.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침묵’으로 포용의 연습을 시작하려 한다. 에고가 불쑥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침묵’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나쁜 감정을 곰팡이와 같이 묵혀두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 그러나 그럴듯한 이 명제가 누군가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 모두에게 최적화된 문화란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의 에고와 타인이 충돌 할 때  ‘침묵’이 우선시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우리는 무시당하는 것을 죽음으로 생각하고 침묵을 약함을 드러내는 기호로 인식하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침묵이다. 말은 사람을 고갈시킨다.
말과 행동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 에고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내면의 흔들림을 잠재우려고 애쓴다.

- 에고라는 적 -


충돌할 때 삼세번의 침묵을 하고, 타인을 바라보는 것. 그 시간을 통해 말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 침묵 뿐만 아니라 포용에 대한 연습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감정을 꺼낼 때 목적을 생각하고 꺼내야 한다던지, 피드백은 10번 중 8개를 버리고 정말 중요한 1-2개만 한다던지. 지나친 솔직함이 단순히 나를 위해서 발현되면 안된다. 나와 너, 우리를 위해서여야 한다. 포용은 나의 삶의 과제다. 이 에고만 죽여도 훨씬 더 나의 ‘대의’에 가까워 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그 일을 잘 해라. 그런 다음 흘러가게 두고 신의 뜻을 기다려라.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인정받고 보상받는 것은 그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그저 일을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

- 에고라는 적 -


그렇다면 ‘대의’는 무엇인가? 아직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다. 지난 2-3년 간 나는 ‘대의’를 이룬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 지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통점은 ‘대의’에 대한 웅장한 마음보다는 끈질김 이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에고를 차마 못 죽이거나, 사람이 마음 가는 대로 되지 않거나, 운이 안좋아 실패를 겪더라도 ‘대의’가 항상 우선시 된다.  


‘대의’를 거창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거창할 것도 없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누구나 각자만의 ‘대의’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 있고, 깨달아도 이를 중요시 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 깨닫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세 번째에 해당한다. 나의 ‘대의’를 찾기 위해서는 이미 찾은 사람들이 어떻게 찾았는지 부터 시작해야겠지? 그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수 있다.


내가 가장 힘들때는, 균형을 잃은 스스로의 모습을 마주한 것이다. 상황에 끌려다니고, 휩싸이고, 에고를 참지 못해 뱉어내고 후회하고. 아래 내용에서 2,3번에 해당될 때다.


내 두뇌가 자신에 함몰되어 있지는 않은가?

1. Executive State : Profrontal Lobes / How can I be challenged? : 이성적인 사고,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가?
2. Emotional State : Limbic System / Am I accepted/loved? : 감정적인 사고, 어떻게 하면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가?
3. Survial State : Brain Stem / Am I safe? : 생존형 사고, 어떻게 하면 내 영역을 지킬 수 있는가?

인간은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1번의 뇌가 꺼지고, 2-3번으로 간다.
- 누가 내 편인가, 내 편이지 않은가? 흑백논리가 지배한다.
-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싸워야 하지? 어떻게 공격해야 하지? 생존에 집중한다.

내가 1,2,3 중 어느 레이어에 있는가? 구분하는 방법은
- 자기 자신에 대해 집중하는 시간이 많은가?
-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은가?

전자에 가까울 수록 경우 1번 뇌가 꺼져간다고 판단할 수 있다.

- 유튜브 존잡생각 -


존잡생각에서는 2,3을 빨리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심하면 3-6개월 정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1번의 뇌를 유지하려면 결국 균형이 중요하다.

균형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러가지가 행동을 할 수 있는데, 솔직히 평생 이 미션을 내가 제대로 달성해본 적이 없다.


1. 정기적인 회고

2. 규칙적인 운동

3. 건강하고 발전적인 영감을 주기적으로 주입시키기


1번은 하다 말았고, 3번은 그나마 지속적으로 해서 나름 순기능을 발휘했다. 2번은 너무 어려웠다. 자꾸 맞딱드린 인정과 성취의 순간에 2번을 우선순위에 미뤄놓았다. 인정은 둘째치고 성취와 2번이 공존할 수 없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2번을 하면서, 성취할 수 있다. 성취한 사람들은 2번을 정말 중요시 여긴다. 2번을 내가 진행하지 못하면 나는 마라톤에서 성공할 수 없다. 에고와도 싸울 수 없다. ‘대의’를 찾고 버틸 수도 없다. 이번에 1번은 못하더라도 2번은 정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고에 지배받을 것인가, 아니면 에고를 지배할 것인가? 당신은 어느 쪽인가?




1. 포용이 필요한 순간 가장 먼저 침묵을 꺼낼 것.

2. 포용에 대한 나만의 원칙을 정하고 실천할 것.

3. 대의를 찾기 위해 대의를 찾은 사람의 발자취를 분석할 것.

4. 균형의 3가지를 지킬 것

- 정기적인 회고

- 규칙적인 운동

- 건강하고 발전적인 영감의 주기적인 주입  

5. 120%의 혈기왕성으로 1번이 위협받고 4번을 후순위로 미룰 때, 120% X 6= 720%, 80% X 9 = 720%을 잊지 말 것.

80%을 하더라도 4번을 미루지 말 것. 시간과 비용은 한정적이며, 이는 결국 아끼는 것이 아니라 분배의 개념이다.



2023년 7월 7일 강릉 에고가 강한 어느 카페에서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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