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김봉진 덕후의 기록 2편
매거진 B를 만든 조수용 대표가『일의 감각』이라는 신간을 냈다. 조 대표는 말한다. 감각은 의사결정력이며, 훈련을 통해 만들 수 있다고.
튀는 아이디어가 감각이 아닙니다. 일을 하는 사람에게 감각은 ‘현명하게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디자인이나 마케팅, 경영을 포함해 모든 업무에서 마찬가지예요. (중략)
무언가 만드는 과정에선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면, 그리고 나의 취향이 있으면, 무엇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죠.
그렇게 본질을 찾아내고 내 취향이 생길 때까지 노력해서 대상을 좋아해야 해요. 그렇게 무언가를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감각의 시작입니다.
『JOH 조수용 1 :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본질과 상식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김봉진 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매일 승승장구했을 것 같던 그도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나?"
뭘 해도 안 될 때가 있어요. 제가 예전 사업을 하다가 망한 적이 있어요.
가구 사업을 하다 망해서 네이버에 들어가게 됐는데 집에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꼭 유명한 회사를 가서 6개월 이상 있어야 은행에서도 신용 대출이 나오는 상황이어서
네이버에 급하게 들어가게 됐는데 계약을 제대로 못하고 들어갔어요.
연봉 1,000만 원 깎이기도 했고 직급도 없이 들어갔는데
6개월 정도 뒤에는 자리가 보장될 것처럼 면접 땐 얘기가 됐었는데
워낙 큰 기업이다 보니까 6개월 뒤에 저랑 얘기했던 분도 없어지고
그냥 나이 많은 디자이너로 덩그러니 앉아있게 된 거예요.
그 상황에서 후배들, 제가 옛날에 '디자인은 이런 거야' '디테일은 이렇게 잡는 거야'
얘기해 줬던 친구들이 옆 팀의 팀장이었고. 그것도 몇 명씩이나.
그런데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이에요.
회사를 나가게 되면 은행 대출을 갚아야 하니 나갈 수도 없고요.
옆 친구들 보면 '내가 인생을 잘 못 살았나?' '뭔가 크게 잘못했나?' 이런 좌절감도 들기도 하고.
옆에 있는 후배들은 그래도 예전에 팀장으로 모셨던 분이
옆에서 저러고 있으니까 그 친구들도 민망해하고요.
그런 상황을 한 2년 가까이 겪었죠.
『김봉진, 직장생활 매너리즘에 빠진 당신이 반드시 들어야 할 대답』
좌절의 크기를 감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나 역시 똑같은 의심을 한 적이 있다.
두 차례 직책을 맡고, 보직 해임을 경험하니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여태껏 내가 잘못 살았나?"
의심이라는 감정은 괴로움보다 공포감에 가깝다.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디까지 틀린 지 알 수 없을 때 끝이 없는 심연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김봉진 님은 그 심연을 기본기로 채웠다고 말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나한테 주어진 어떤 상황들이 나한테 유리한 상황일 수 있지만
나한테 유리하지 않은 불리한 상황으로 아주 오랫동안 갈 수도 있는 거고
그건 내가 다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삶이란 건 나를 통제할 수 있는
어떤 거대한 힘이 영역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뭔가 일이 꼬였다, 잘 안된다고 생각이 들면
그땐 기본기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아요.
기회는 또 언젠가 큰 기회든 작은 기회든
언젠가 다시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너무 상황에 대해 좌절하거나 벗어나려고 하는 거보단
자기가 하는 일의 기본기를 꾸준히 단련해 보는 시간
저는 그 시간을 그렇게 보냈던 것 같아요.
『김봉진, 직장생활 매너리즘에 빠진 당신이 반드시 들어야 할 대답』
김봉진 님은 2년 동안 네이버 오픈캐스트에 디자인과 관련된 사이트나 콘텐츠를 매일 8개씩 올렸다.
그걸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정확히 755일. 계절이 네 번 바뀔 동안, 그의 삶도 조금씩 바뀌어 갔다.
그전까지는 시안을 잘 뽑는 디자이너에 그쳤다면,
이후에는 제 자신이 한 단계 성장한 디자이너가 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올린 내용들 중 스마트폰에 관한 것들도 많았죠.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이 뭔지 설명해야 해서 아이폰에 관한 자료조사를 했어요.
그걸 오픈캐스트에 올리다 보니 스마트폰이 미국에서는 어떻게 쓰이고,
일본에서는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게 됐어요.
아이디어가 뛰어난 서비스보다 생활에 더 밀착한 실용적인 서비스들이 오래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한국에 스마트폰이 들어오면 114 서비스처럼 전화 안내 같은 걸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음식점과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안내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게 배민의 시작이고요. 그때부터 뭘 하든지 일단 한다고 하면,
결과가 나오건 안 나오건, 닳도록 계속해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김봉진, 배민다움』
사실 위 내용은 몇 년 전에 읽었던 구절이다.
당시 그를 따라서 2021년 브런치에 '일간 안목'을 연재했다.
나도 조수용 대표가 언급한 '감각 훈련'을 시도한 셈이다.
지금 세어보니 2달간 17개의 글을 올리고 중단했다.
이직한 회사에 매몰되어 브런치는 쳐다보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새삼 꾸준함은, 얼마나 위대한 가를 깨닫는다.
만약 3년 전, 기본기를 꾸준하게 길러왔다면. 내 삶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업(業)부터 정의해 보기로 했다.
김봉진 님은 본인을 <경영하는 디자이너>라고 말한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디자인하는 걸 좋아했고
크리에이터들하고 얘기하는 걸 좋아했고
그들을 도와서 뭔가 사업으로 만들어내는 일에
재능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본질적으로 그런 역할을 계속 맡는 것 같아요.
가끔 구성원들에게 농담처럼 말해요.
"내가 진짜 디자인 잘하는 사람이다. 근데 경영하는 사람 중에."
"내가 경영 진짜 잘하는 사람인데, 디자인하는 사람 중에."
제가 경영을 제일 잘하지는 않아요. 디자인도 제일 잘하지는 않아요.
아주 적절하게 포지셔닝된 게, 저에게는 행운인 것 같아요.
디자이너의 다른 말은 장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장인들을 찾고, 장인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사업을 만들어내는 일에
소명과 여러 즐거움을 느끼고 있어서 그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디자인을 해서 뭔가를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저는 말로만 디자인하고
(디자인은) 디자이너들이 해요.
디자인에 대한 콘셉트를 잡는 것은 굉장히 즐거워하고
오히려 디자인을 잘하시는 분들, 브랜딩을 잘하시는 분들을 찾아가서
그분들의 능력을 잘 빌려와서 사업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하죠.
『김봉진, 경영하는 디자이너 김봉진의 시각을 확장시킨 브랜드』
나의 이력서 타이틀은 그로스 마케터다. "비즈니스 성장에 기여하는 모든 마케팅을 합니다."
어쩌다 보니 퍼포먼스, 브랜드, 콘텐츠 두서없이 기웃거리며 지표를 성장시켜 왔다.
좋게 말해 제너럴리스트고, 나쁘게 말해 전문성이 부족하다.
냉정하게 돌이켜봤다.
앞으로, 이 직업이 수십 년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인가?
나의 생산활동을 규정할 수 있는가?
나를 기본기를 수련할 수 있는가?
네가 정의하는 마케팅은 뭔데? 네가 정의하는 성장은 뭔데?
머리가 쫌... 복잡해진다. 김봉진 님의 문장으로 생각을 다시 정리해 봤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는 걸 좋아했고
만화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사람의 이야기(서사)를 통한 성장을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 마케터로 일하면서 알게 됐어요.
내가 좋다고 느낀 '제품의 가치'를 '필요한 고객'에게 공유하고,
그들의 일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었을 때.
그 변화의 숫자가 수십 명, 수만 명, 수백만 명으로 성장했을 때.
무엇보다 보람차다는 것을.
그래서 저는 그냥 본질적으로 그런 역할을 계속 맡는 것 같아요.
마케터의 다른 말은 편집자라고 생각하거든요.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편집하여 보여주는 것이죠.
편집의 방식은 무궁무진해요.
글, 영상, 이미지, 디자인, 이야기, 책, 종이, 공간...
때로는 진심 있는 한 마디만 필요할 때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쓰는 브런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발견한 '유의미한 실감'들을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전달하고 싶어요.
문득 생각이 들었다. '돈 잘 버는 에디터'는 어떨까?
두 개의 단어가 나란히 있는 게 어색하다. 에디터라는 직업은 왠지 자본주의와 멀어 보이지만...
'편집한 가치'가 잘 전달되었다면
'많은 수신자'들은 행복하게 '지갑'을 열지 않을까?
이런 단순한 생각에.
2021년, '일간 안목'을 지속하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 봤다.
콘텐츠의 양이 많고, 밀도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글을 하나 쓰는데 최소 1시간 이상은 걸린다.
가볍게, 10분만 투자해서 올리자.
매일 인상 깊었던 편집의 기술들을 올리면 어떨까? 제약은 없다.
단어를 편집한 문장이 될 수도 있고, 글 하나 없는 이미지들의 콜라주가 될 수도 있다.
요즘 저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인생을 여태껏 잘못 살았나?"
앞으로 돈 잘 버는 에디터가 되고 싶습니다.
매일 편집의 기본기를 훈련하려 합니다.
내일부터 이곳에 차근차근 쌓고자 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daily-editing
제 삶도, 10년 전 김봉진 님처럼 달라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