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관련 특허는 농업인이 아이디어를 낸 경우가 많겠죠. 농대 교수가 출원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런데 수경재배 장치 관련 특허를 둘러보면 유독 다른 분야에 비해 무용지물인 특허가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베란다 공간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도입해 가정용 수경재배기의 문제를 해결한 모 특허는 '별도로 설치된 타이머'라는 부품을 빼버리면 회피가 가능합니다.
식물 한 포기 한 포기에 직접 양액을 공급하면서도 각각의 수위조절이 가능한 모 수경재배기법 특허는 '인삼'에만 한정되어 있죠. 이런 식으로 특정 '작물'로 범위를 한정짓는 내용이 청구항 1항부터 떡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엘지전자가 출원인인 특허들은 이런 문제가 거의 없거든요. 유능한 변리사가 신경써서 만든 작업물에는 이런 경향이 덜하다고 보면 되겠죠. 기계공학이나 전자공학 전공이 아니었을 농부의 아이디어에 진보성이 부족해서 무리하게 등록시키려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고객을 얕잡아 본 악덕 변리사가 대충대충 처리해 버린 것일까요.
후발주자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자기 돈 수백만원을 써가며 아이디어를 불특정 다수에게 오픈해 주니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겠지만, 출원인의 심정에서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집니다. 시류를 앞서간 신기술을 힘들게 만들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특허출원에 대한 논의가 내부에서 진행되겠죠. 정부과제를 수행 중인 스타트업은 출원을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 가능성이 큽니다. 정량적인 실적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요. 혹은 시장에서의 독점적인 권리를 보장받고 싶은 마음에 출원을 결심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앞서 본 수경재배기기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결말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권리범위를 탄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형태로 출원해야 해요. 비싼 돈 줘 가면서 남 좋은 일만 시킬 수 있거든요.
변리사가 써 온 청구항을 분석할 수 있는 인력이 내부에 없다면, 돈을 주고서라도 외부에 자문을 구하는 편이 현명할 수 있습니다. 엑셀러레이터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팀은 투자자한테 들고가서 자문을 구하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