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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작품을 예술로 인정할 수 있을까?

생성형 AI의 모든 것

by 반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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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작품을 예술로 인정할 수 있는가?


무언가를 예술로 인정해도 될지 고민하고 있다면 미술사를 펼쳐보면 됩니다. 이미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두고, 미술가들이 격하게 싸우며 결론을 내려둔 바 있기 때문입니다. 미술계에서 예술의 경계를 어떤 식으로 허물어갔는지를 살펴본다면 AI가 만든 작품이 예술인지 아닌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연필과 붓으로 종이 위에 빚어낸 형상만을 미술이라 인정하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특히 샤를 보들레르 등의 평론가들은 사진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은 렌즈에 맺힌 빛을 인화지 위에 기계적으로 가두어 둔 것일 뿐, 거기에는 어떤 영감이나 예술혼도 존재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누구도 사진이 예술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영국은 사진술을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시켜 국가적 경쟁력으로 삼기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사진사들은 정부의 협조를 구해 가며 사진전을 개최했고, 정부는 사진을 비싼 가격에 구매해 주며 시장을 지탱했습니다. 이러한 기조는 해외로도 뻗어나가며, 프랑스 법원에서 사진을 예술이라 인정하는 재판까지 생기며 정책적으로는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술이 정치인들의 입맛에 따라서만 움직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 과정에서 미술가들 사이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누군가 이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사진으로 찍으면 되는데, 왜 그림을 그려야 해?"


화가가 아무리 열심히 붓을 놀려도, 사진보다 리얼(real)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개척한 예술가들의 사조를 리얼리즘이라고 부릅니다. 미술가들은 무엇이 리얼인가, 사진보다 더 리얼한 장면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메시지들을 그림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예술사조가 인상주의입니다. 인상주의자들은 그림은 사진이 아니므로, 굳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감각, 메시지, 감동 등을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원근감을 무시하거나 그림의 일부 영역을 과장하는 등의 과감한 시도가 있었지요.


이때부터 미술은 사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적인 묘사, 아주 디테일한 질감 표현 등은 <사진>이라는 별개의 예술 영역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곧 인상주의가 주류 예술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의 미술 사조가 인상주의를 부수는 방향으로 정착한 것은 당연한 흐름일 것입니다. 더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열망이 인간에게는 내재되어 있으니까요. 이러한 격변이 한 번 일어날 때마다 미술의 영역은 끝없이 확장해 갔습니다.


화가들이 <사진기>라는 도구를 그저 영혼이 없는 도구로만 치부하고, 아예 그 존재 자체를 무시했다면 사진은 예술로 인정받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미술사의 발전도 거기서 멈춰버렸을 것입니다. 그림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을 것이며, 미술 산업은 영락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술가들이 "우리는 기술이 표현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겠다."라는 결론을 내린 덕분에 미술이 더욱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마르셸 뒤샹이 개념미술을 창시한 이후에는 사실상 예술과 비예술의 벽이 허물어졌습니다. 미술관에 전시된 변기통을 구경하기 위해 구름같이 사람들이 몰려오고, 스카치테이프로 벽에 붙여둔 바나나가 억대를 호가하는 작품으로 인정받는 세상입니다. 현대미술이 난해하다는 비판을 받도록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미술을 무한한 영역으로 확장한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미술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생각하면 생성형 AI의 작품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생성형 AI 모델이 저장된 하드디스크 자체도 예술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AI가 그린 그림이 경매에서 수십억 원에 낙찰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조만간 알파고와 같은 유명 AI의 초기 서버가 미술품 경매에 출품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AI의 작품은 물론, AI 그 자체도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미술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웹툰이나 일러스트같은 상업미술이 예술인지 아닌지 논의할 필요 자체가 없어졌으며, 동영상 역시 미술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아름다운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직장인들도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인터넷으로 경매에 참여해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한두 점쯤은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요. 19세기의 미술가들이 21세기의 미술 산업을 바라본다면 먹고 살기 참 좋아졌다며 감탄할 것입니다.


미술 사조의 발전과 진화를 강요한 <사진기>라는 존재를 <생성형 AI>로 바꾸어 생각해 봅시다.


사진기의 발명 직후 미술가들이 느낀 충격과 박탈감은 현대의 예술가들이 생성형 AI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과 비슷합니다. 거장이 "모욕감을 느낀다."라고 발언하는 모습도 비슷하고,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예술가들이 "이제 내가 설 자리는 없다."라며 한탄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둘러봐도 생성형 AI에 대한 회의감이나 반발심을 표하는 예술가들의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창작을 아름다움의 표현이 아니라 생계 수단으로 삼는 분들은 입장이 아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기의 등장 이후,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유지하던 화가들이 크게 괴로워했을 것은 자명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SNS를 통한 그들의 주장 중 대부분은 이미 19세기 미술가들이 했던 이야기들입니다. 수많은 논거가 있지만, 그만큼 방대한 분량의 반박도 존재합니다. 반론이 더욱 큰 공감을 받았기에 예술 사조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기도 하고요.


결국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사진기의 보급 속에서도 인상주의를 꽃피웠던 천재들이 등장한 것처럼, 생성형 AI와의 경쟁 과정에서 탄생한 새로운 갈래의 인상주의가 등장하며 예술의 패러다임을 한 단계 더 진보시킬 것입니다. 예술 사조의 전환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둘 중 하나입니다.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하며 발전에 이바지하거나, 압도적인 실력으로 과거 스타일의 작품을 제작하며 새로운 흐름을 조롱하거나.


필자 또한 예술인 활동 증명을 받은 아티스트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작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글>이라는 예술의 영역에서 GPT를 비롯한 생성형 AI와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처지의 위태로운 예술가입니다.

타자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원고지와 연필을 고집하던 분들은 타이핑된 글에는 영혼이 없다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워드프로세서가 처음 나왔을 때, 타자기를 고집하던 분들은 텍스트 파일의 복제 가능성을 두고 글의 유일성, 실존성을 문제 삼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챗GPT가 등장했을 뿐입니다.


AI의 작품을 예술이 아니라 깎아내리며 두려움을 표현하는 것은 AI를 나와 동격인 예술가로 인정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AI를 도구로 인식하고 창작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동료 예술가들이 활용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AI를 도구 그 자체의 영역으로 격하시키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AI를 경쟁상대로 부풀리는 것은 두려움만을 촉발합니다. 도구를 도구의 영역에 머무르게 두는 것이야말로 예술가가 자기 자신의 고유 영역을 지키고, 확장하며, 더욱 가꾸는 방향일 것입니다.


따라서 생성형 AI의 작품을 예술이 아니라 부정하기보다는, 생성형 AI는 예술품의 제작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이며, 산출물은 AI가 아니라 <Enter> 키를 누른 사용자의, 도구를 사용한 예술가의 예술 작품이라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메라의 등장을 부정했던 예술가들을 현대의 미술관에 데려간다면, 어쩌면 모더니즘 이후 작품은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지 않을까요? 요즘에는 그런 사람을 전문가로 인정하는 미술 전공자들은 한 명도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우리의 고뇌는 후대에 어떻게 평가받을까요? AI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새로운 시대의 예술 사조에 기여한 작품으로 남을까요? 혹은 사진술을 비난하다 미술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일부 화가들처럼, 모두에게 잊힌 채 끝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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