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성 Aug 25. 2023

야누스 (Janus) 혹은 페르소나 게임

임시로 스톡홀름에 삽니다 2 

이번주 내내 내가 가장 신경을 쓴 일은 저널 투고를 위한 논문 준비도 아니었고, 10월부터 시작하는 티칭 준비도 아니었다. 바로 9월에 참석할 두 번의 국제 학회 일정을 짜기 위해 Egencia라는 홈페이지에서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는 일이었다. 콘퍼런스 장소와의 거리, 가격, 동료들이 예약한 숙소와의 거리 등을 참고해 런던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겨우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숙소를 구한 뒤 예약을 확정하기 직전. 내 눈에 들어오는 '필수 입력 란'이 하나 있었다.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나의 지위를 묻는 것이었다. 선택지에는 교직원 (employed)과 학생(student)이 둘 다 있다. 무엇을 고를지 난감한 일이다. 물론 모범답안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잠시 머뭇거린다. 문제당 답이 하나밖에 없는 수능 문제 풀이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내가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인지 궁금해질 정도이다. 


박사 과정 펀딩의 관점에서 볼 때, 스웨덴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학과에서 돈을 지원하든, 연구자의 프로젝트에서 고용하든, 학교별 단체 협상으로 정해진 금액의 월급을 받고 4년 혹은 5년 계약직 교직원이자 박사과정 학생으로 고용되어 일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이곳에서 'industridoktorand (industry PhD student)'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회사나 정부 기관 등에서 이미 고용된 사람을 선발해서 학교에서는 수업을 듣고 논문 지도를 해주는 교육 서비스만 제공하고, 월급 등의 재정적 지원은 일절 하지 않는 방식이다. 혹은 다른 연구 기관 소속인데 박사 과정만 스웨덴에서 밟는 경우도 포함되는데, 핵심은 학과에서 인건비 지출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나도 전자의 고용 방식을 따르고 있다. 


스톡홀름대학교 박사 과정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스웨덴 박사 과정은 학생이자 교직원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줄곧 들었다. 유학을 위해서 조금 부끄러웠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친척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고, 석사 유학 도중에도 부업을 하면서 겨우 생활비를 마련하며 석사 공부를 하던 당시에는 더 이상 등록금도 낼 필요가 없고 오히려 생활비를 준다는 말에 혹해서 학생과 교직원의 두 정체성을 한 몸에 담아내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 


박사 과정에 들어간 다음에도, 2020년 9월 25일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월급다운 월급을 받은 다음에도 사실 이중 정체성의 의미는 깊이 와닿지 않았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박사 과정을 마칠 때까지 경제적 자립에 성공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소득세를 내면서 '영주권 심사 포인트'를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 이후 실업보험, 교직원 노조, 교직원용 사보험, 스웨덴 국민 연금 등에 가입하면서, 그리고 스웨덴 공휴일에는 어떤 연구자도 굳이 연구실에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에게 주어진 29일의 연차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오피스 메이트이기도 했던 박사과정 선배의 조언을 들으면서 내가 '고용되었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갔다. 물론 내가 박사 과정 학생이라는 것은 굳이 상기하지 않아도 수업을 듣고 논문 슈퍼바이저와 면담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내가 이중 정체성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역할 갈등을 느낀 것은 박사 과정을 시작한 후 한참 시간이 지나서 내가 관여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고,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다가 둘 다 지지부진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부터였다. 어렴풋이 생각하던 이상과 달리, 나는 서류상으로는 교직원이자 학생이지만, 내 상황에 따라서 나는 언제나 학생 혹은 교직원으로서만 존재했다. 박사과정 학생에게 '학생'이라는 표현도 붙이지 않고 박사과정 학생이라는 단어를 따로 만든 (doktorand, 이를 번역할 때는 doctoral student 혹은 PhD student라고 번역해야만 한다. 석사나 학사 과정은 스웨덴어로도 student라고 부른다) 스웨덴 출신의 학과 동료들도 결국 박사과정 학생들을 대할 때는 자기의 필요에 따라서, 혹은 그때그때 상황적 요구에 따라서 나를 학생 혹은 직원으로 대했다. 나는 두 정체성이 내 몸에 다 깃들어서 내가 야누스 (janus: 머리의 앞뒤로 얼굴을 지닌 로마의 신으로, 1월 (January)의 어원이 되는 신이다)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현실은 조금 달랐다. 학생과 교직원이라는 두 개의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는 모습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을 페르소나 게임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싶다. 


역할 갈등이 발생하거나, 스웨덴식 박사 과정의 모호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맥락에서 나는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특정한 처지가 되기를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할 때도 있었다. 예컨대, 나는 한국에서는 내가 돈을 받고 일하는 학생임을 은근히 강조했다. 이건 아마도 이미 취직해서 경력직으로 이직까지 경험한 친구들에 비해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열등감이 석사 과정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결과물인 같기도 하다. 하지만 스웨덴이나 다른 유럽에서 학생 할인을 받을 기회가 있으면 나는 순도 100%의 학생인 것처럼 군다. 3년 동안 그렇게 아낀 비용이 아마 나의 두세 월급보다 많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만 이런 혼란을 겪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박사 과정 학생들끼리 점심을 먹으며 '학생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직장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어떻게 다른지, 티칭이나 행정 업무 같은 교직원으로서의 업무와 박사 과정 논문 진전이라는 학생으로서의 업무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슈퍼바이저들이 어떤 조언을 하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제각각 답이 다르지만 뭔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공감대는 확실한 것 같다. 


물론 이런 푸념 아닌 푸념이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배부른 소리로 들릴 것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내가 한국 대학원을 그만두던 시기, 대학원생 노조를 만들고자 하는 학내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동조하는 사람이 적었고, 동조하지 않는 당사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지도교수나 랩의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석박사 과정을 밟는 대학원생들이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노동자임을 인정받지 못해 산재나 실업 보험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같은 유럽이라고 하더라도 모두 스웨덴 같은 제도를 따르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경우, 한국 대학원과 훨씬 유사한 상황이라서 학생들은 '월급'을 받지 않아서 최저임금법이나 다른 사회보장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당연히 그들을 대변하는 노조도 없다. 그러다 보니 교수들의 권력은 무소불위에 가깝고, 박사 과정 학생회가 있지만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도 어떤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다소 독특한 이 제도의 당사자가 되어 경험한 내용을 차갑게 되돌아보고 내가 느낀 점을 정리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만약 내가 졸업하기 전에 새로 들어오는 박사 과정 학생의 멘토가 되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줄 기회가 다시 온다면, 나 또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할 것 같다. 이 미묘한 줄타기와 페르소나 게임은 결국 겪어봐야 제대로 노는 법을 익히기 마련이므로. 그리고 박사 과정을 마친 다음에는, 나를 소개할 '이것이기도 하지만 저것이기도 합니다'와 같은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 아무 불만이 없더라도 성격 나는 떨어지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 


*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이, 스톡홀름에서 3년 동안 학생 요금으로 대중교통, 공항 철도, 기차를 이용하고 모바일 요금제, 각종 구독 서비스 등을 구매하며 아낀 금액만 따져도 한화로 몇백만 원을 웃돌고, 학생 신분으로서만 이용 가능한 학생용 주택을 이용하면서 아낀 임대료 총액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반면, 교직원 신분을 보장받아서 아낀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예컨대 출장비를 청구하거나 비싼 연구용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지원받을 때에는 내가 '교직원'이기 때문에 혜택이 제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박사 과정 학생이 연구원 혹은 교직원으로 학교에 고용되는 방식은 아무래도 북서유럽에서 더 흔한 제도인 것 같다. 물론 학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영국이나 남유럽에서는 대체로 장학금의 형태로 생활비를 지급하고, 티칭 등을 하는 경우 추가로 돈을 지급하거나, 티칭이 의무로 할당된 경우가 더 일반적으로 보인다. 


Photo by benjamin lehman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