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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성 Mar 12. 2024

런던 여행기 (2)

다문화사회를 일구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익숙함일까?

런던에 가서 영국 음식만 피하면 맛집을 찾기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온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런던에 오래 살았던, 혹은 런던을 자주 방문했던 사람들에게 음식점 추천을 받으면 인도, 태국, 일본, 중국, 심지어 한국 음식점 이름이 술술 나오는 반면 '영국 전통 음식'을 파는 곳을 추천해 주는 사람은 만나기 드물다. 


사실 런던에서 하루를 보내기 전 2박 3일 학회 일정에서 점심 식사를 할 때마다 뭔가 영국에서 자주 먹는 음식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먹어보기는 했다. 고등학교 급식, 혹은 군대 음식이 떠오르는 맛이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수백 명에게 배식하는 것 치고 학교나 군대 음식의 질이 그렇게 낮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콘퍼런스 점심 역시 최악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조그만 샌드위치 세 조각에 사과 한 개가 콘퍼런스 런치로 나오는 수준도 이미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뭔가 따뜻한 음식이 나오고, 탄단지와 (삶아서 물러 터진) 야채가 같이 나오는 것은 충분히 품격 있게 느껴졌다. 


각설하고, 저녁을 태국 음식점에서 먹고, 스웨덴에서 석사 공부를 마친 후 런던에 취직한 친구와, 런던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친구의 친구, 이렇게 4명이서 주요 랜드마크를 보고 돌아다니면서 본 런던 시내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지하철만 잘 이용하면 웬만한 곳은 갈 수 있었고, 슬몃슬몃, 대강대강 봐도 빅벤과 런던 아이는 꽤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저녁 산책을 나오면서 여러 랜드마크를 눈에 담아 두었다. 그냥 눈으로만 담아 두었다. 

그다음 날에는 아침을 주지 않는 숙소를 나와서 패딩턴 역에 있는 슈퍼를 구경할 겸 들어가서 스콘을 두 개 사서 먹었다. 유학 가기 전 한국에 살던 집 근처에도 스콘을 잘 굽는 빵집이 있었는데, 스웨덴에서는 그만큼 만족스러운 스콘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론 찾아보면 없지는 않았겠지만, 맛있는 음식을 좋아해도 시간을 들여서 찾아 먹는 성격은 아니라서, 그냥 내가 아는 범위 안에 없으면 없는 셈 치는 내 성격 덕분에 못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패딩턴에서 먹었던 스콘은 아주 평범한 것이었고, 서너 종류를 쌓아 놓고 팔고 있었는데, 아침이라서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고, 한국에서 먹었던 그 집만큼이나 맛있었다. 어쩌면 스콘 두 개와 펩시 맥스와 함께한 아침이 영국에서 먹었던 가장 맛있는 식사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렇게 짧은 1박 2일의 런던 찍먹을 마치고 영국에 가족이 있어서 자주 가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정리한 생각은, 영국에서 관광객으로서 느꼈던 편안함/덜 불편함의 큰 부분은 다른 유럽의 주요 수도에서 노골적으로 마주했던 인종차별이나, 나를 평범한 사람이 아닌 외계인으로 보는 시선의 빈도가 훨씬 덜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 그대로 다양한 인종과 배경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경험 자체가 이런 분위기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는 친절함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낯선 것을 보면 '고장'나고, 낯선 것, 혹은 예상하지 못한 것 앞에서 친절함이 바로 무력화되면서 무관심, 외면, 무시 등으로 급선회하는 일이 잦다. 런던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스웨덴 사람들보다 친절하다는 인상을 받기는 어려웠지만, 내가 필요한 만큼은 친절했다. 워낙 다양한 존재들을 보고 살아온지라 '고장'나지 않고 수용하는 범주가 더 큰 느낌이 들었다. 런던에서의 경험을 스톡홀름에서의 경험, 그리고 로마, 파리, 베를린 같은 다른 유럽의 큰 수도에서 겪었던 우여곡절과 비교하며 곱씹어보니, 어쩌면 내가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의 일부는 인종차별의 의도를 담은 것이 아니라, 낯선 것 앞에서 고장 나서 인간으로서 으레 갖추는 예의를 갖추지 않은 언행의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의도가 어떻든 간에 이런 일을 겪으면 불쾌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니 내 앞에서 사람들이 덜 고장날수록 나의 당황스러움과 불쾌감도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아마도 런던은 나에게 특별히 친절한 곳은 아니더라도, 나와 의사소통을 한 사람들이 특별히 덜 고장 난 곳이었다. 

패딩턴 역을 떠나기 전에 찍은 The Wild Table of Love. 그냥 신기해서 찍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좋은 의미가 담긴 예술작품이었다. 


물론 한 꺼풀 더 들여다보면, 영국, 특히 런던에서는 영어가 통한다고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대화해도 상대방은 나의 악센트를 통해 내 국적과 출신성분을 바로 재단하고, 그에 맞게 대우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어민이 될 수 없는 존재인 나에게는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 교양 수업에서 읽었던 Native Speaker (1995)의 주인공이 겪었던 트라우마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아마 관광객으로서 잠깐 지내는 것이 아니라 몇 년을 살아야 한다면 그곳 삶에서 오는 괴로움과 설움도 스톡홀름 못지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은 몇 번 더 가보고, 좀 더 느껴보고 싶은 도시로 기억된다. 


나중에 나는 스톡홀름을 어떻게 기억할까? 박사 공부를 마치고 바로 쫓겨난다면 (가능성이 아주 낮은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은 확실하게 이 길로 가고 있다) 아마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애증의 장소로 남게 되겠지. 거주허가증이 만료되어서 등 떠밀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좋게 나간다면 그래도 이곳에서 보낸 5년 (스웨덴에서 보낸 시간을 모두 합하면 약 8년)을 추억하면서 아주 가끔은 다시 방문하는 곳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확실한 것이 없다. 


불확실성이 일상화되는 것을 보니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던 그 시기처럼 다시 내가 알을 깨고 어디론가 날아가야 하는 시기가 다가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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