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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성 Jun 21. 2024

에든버러 여행기 (2)

먹고 마셨던 이야기

지난번 여행기에서 밝힌 대로 스코틀랜드 여행 중에는 먹고 마실 것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 쌓였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기에 스코틀랜드 위스키를 맛보지 못했지만, 색다른 매력을 가진 탄산음료인 아이언 브러 (Irn Bru)를 발견했으며, 해기스 맛집에는 결국 가지 못했지만, 해기스를 제외한 나머지를 고루 갖춘 스코틀랜드식 아침 식사도 먹어보았고, 영국 음식의 대표로 떠오르는 피시 앤 칩스도 맛보았다. 각 식음료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자.


아이언 브러 (Irn Bru)

아이언 브러는 스코틀랜드에서 1901년부터 팔기 시작한 탄산음료이다. 맛과 빛깔은 오렌지 맛 환타와 비슷한데, 정확히 그 맛은 아니다. 어렸을 때 먹던 감기약의 맛과 오렌지 맛 환타 맛의 중간 그 어딘가인데, 청량감이 있지만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아서 부담스럽지 않은 맛이다. 이탈리아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칵테일 (안타깝게도 이탈리아 친구조차도 그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과 맛이 비슷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인 제로 음료의 열풍 때문인지 슈거 프리 버전도 같이 판매했다. 처음에는 설탕이 들어간 일반 버전을 고구마 튀김과 같이 먹었고, 다음날 숙소 옆 마트에서 무설탕 버전의 존재를 알게 된 다음부터는 슈거 프리 버전을 몇 병을 사서 스웨덴으로 가지고 왔다. 

지나가는 자판기에도, 지나가는 테스코에도 아이언브러가 잔뜩 있다. 1901이라는 숫자가 크게 쓰여 있는데 100년도 넘은 음료라는 데에 자부심이 상당한 것 같았다.

아이언브러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식당이나 편의점을 둘러보니 어딜 가도 아이언 브러가 잔뜩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역시 아는 만큼 눈에 보인다고 했던가.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스코틀랜드에서 유일하게 코카콜라를 뛰어넘는 음료라고 하는데, 스웨덴의 율무스트가 겨울에 항상 코카콜라 판매량을 뛰어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하면 될까 싶다.  한국에서도 수입해서 파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아이언브러의 맛이 궁금하다면 한 번 정도는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다만 나의 탄산음료 취향은 꽤 독특하다는 점은 미리 밝혀두어야겠다. 예컨대 나는 제로 음료만큼은 코카콜라 제로보다 펩시 제로 (라임맛이 아닌 그냥 펩시 제로, 혹은 유럽에서 파는 버전으로 치면 펩시 맥스)가 맛있다고 주장하며, 체리콕을 상당히 좋아하지만 레몬이나 라임 콕은 싫어하는 편이고, 닥터 페퍼를 좋아하는 반면 환타나 스프라이트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필자의 이런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영국 여행을 가서 아이언브러를 한번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다. 


블랙 푸딩, 그리고 다음 기회로 미룬 해기스

호텔 아침 식사는 구운 토마토, 버섯, 달걀, 해시브라운, 소시지, 베이컨, 빵, 그리고 블랙 푸딩이 나오는 스코틀랜드 정통 아침 식사를 표방했지만 아쉽게도 해기스는 나오지 않았다 (학과 동료가 묵었던 호텔에서는 아침마다 해기스가 나왔다고 하니 호텔마다 편차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해기스 전문점을 학회 2일 차에 가보려고 했지만, 그날 유독 피곤한 사람들이 많아서 (필자를 포함) 해기스 원정대는 결국 와해되었고, 나는 집 앞에 있는 파이브가이스에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퍼 주는 감자튀김과 함께 치즈버거를 먹었다. 해기스를 먹어본 사람들 일부 한국 사람들은 순대를 먹을 줄 알면 해기스도 큰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고 했는데, 나의 평가는 아무래도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해기스를 위해서라도 다음에 스코틀랜드를 한 번 더 방문할 것이다. 


스웨덴에서 케밥 피자를 파는 것처럼 에든버러에서는 해기스를 얹은 피자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해기스도 좋고 피자도 좋지만, 해기스를 피자에 얹어 먹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케밥 고기를 얹은 피자를 본 이탈리아 친구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해기스 피자를 본 내 마음이었을까? 

HP 소스의 모습이 잘 담긴 호텔 아침 식사. 섬유질 공급원이라고는 정말로 구운 토마토와 설탕에 절인 과일이 전부였다. 

호텔에서 먹었던 아침식사에 관해 조금 더 보태자면, 블랙 푸딩과 소시지를 영국식 브라운소스에 찍어 먹었더니 의외로 조합이 괜찮았다. 찾아보니 영국식 브라운소스는 프랑스식 브라운소스와 달리 토마토 베이스에 몰트 식초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 몰트 식초가 시큼하지만 풍미가 느껴지는 HP 소스 맛의 근원이었다. 블랙 푸딩에서 어느 정도 돼지 잡내 비슷한 것이 났는데, 이 냄새를 잡아준 것은 물론, 구운 토마토를 제외한 다른 음식에서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적당 수준의 산미를 담당했던 것도 바로 HP 소스였다. 지난 두 번의 영국 방문 때에는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아예 제공해주지 않거나, 구운 토스트에 차 한 잔 겨우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브라운소스를 먹을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서야 비로소 '영국 음식'을 한층 더 깊이 알아가는 느낌이다. 


피시 앤 칩스: 이렇게 살찌기 좋은 음식이?

이번 여행에서는 피시 앤 칩스를 두 번 먹었다. 한 번은 꽤 별점이 높은 펍에서, 한 번은 그냥 콘퍼런스 장소에서 가까운 펍에서. 가격은 18 파운드와 15 파운드. 3파운드 차이가 얼마나 날까 싶지만 18 파운드였던 첫 피시 앤 칩스가 내 기준을 너무 올려 버렸는지 두 번째 먹었던 것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같은 생선을 사용했지만 두 집은 전혀 다른 음식을 판매하는 것 같았다. 다소 실망스러웠던 두 번째 펍에서 내온 피시 앤 칩스는 냉동을 에어 프라이어에 돌린 수준의 퀄리티였던 반면, 첫 번째 먹었던 것은 바로 튀긴 티가 팍팍 났고, 튀김은 아주 바삭한 방면 튀김이 감싸고 있는 해덕 대구 살은 여전히 촉촉했다. 감자튀김의 퀄리티도 대체로 생선을 따라갔다. 이렇게 제대로 만든 피시 앤 칩스를 접한 다음 두 번째 펍에서 느낀 실망감을 요약하자면 스톡홀름에서 돈값을 못하는 식당을 수도 없이 많이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할 거리가 남아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굳이 번호를 매기지 않아도 어느 쪽이 더 맛있어보이는지 티가 난다. 오른쪽 사진에 있는 푸르스름한 사이드의 정체는 으깬 완두콩이다.

여하튼, 드디어 나도 영국에서 피시 앤 칩스를 먹어봤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자주 먹을 음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살찌기 좋은 음식이 있을까? 그나마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서 제로 콜라와 같이 먹었지만 여기에 맥주를 곁들인다면 한 끼에 권장 섭취 칼로리의 절반 이상을, 그것도 야채 없이 기름진 튀김과 술로 채우는 셈 아닌가. 하루 종일 고된 육체노동을 한 다음에 '칼로리 부족' 상태를 채우는 데에는 효과적이겠지만, 제2의 흡연이라고 불리는 좌식 생활을 하는 현대인의 전형적인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전혀 바람직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나마 건물 이곳저곳을 이동한다고 2만 보 가까이 걸어서 죄책감을 덜 수 있었지만, 다음 여행에서는 그냥 구운 생선 요리를 먹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먹는 이야기만 하다 보니 에든버러에 머물면서 느꼈던 생각 몇 가지가 아직 남은 것 같다. 글로 따로 낼만큼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여행기 3번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혹은 올해가 가기 전에 에든버러를 한 번 더 다녀온 다음에 3번을 이어갈지도 모르겠다. 학회 일정이 바빠서 도시 구경은 거의 하지 못했지만 매력이 넘쳤기 때문에 다음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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