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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Aug 24. 2021

다시, 가족 대화

가족의 시간 01

저는 하브루타 교사입니다. 2014년부터 약 8년째 학교에서 둘씩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브루타를 만난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은 수업 분위기였어요. 점심 식사를 한 후 5교시에도 아이들의 표정과 생각이 살아 있는 듯, 역동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대화를 이어가더라고요. 하브루타를 실천한 수업 일기를 책으로 냈고 강의도 나갔습니다. 선생님들께 하브루타로 달라진 수업 이야기를 전하고 나면 행복한 교육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보람까지 느꼈습니다.


하루는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와 달리, 가정에서는 하브루타는커녕 가족끼리 대화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교실에서는 아이들과 하브루타를 잘하는데 왜 집에서는 힘들까?’ 하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가정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하브루타, 학교라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 가정에서는 마음과 삶을 나누는 대화가 왜 힘든지,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학교에서 하는 것처럼 하브루타를 준비하여 가정에서 아빠의 진심을 담아 가족 이벤트식으로 몇 차례 도전해 봤습니다. 하는 족족 과정과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짜증 섞인 가족들의 표정이 보였습니다. 시계만 보며 불평하는 큰아이, 식탁 아래로 숨거나 의자에 오르내리는 작은아이, 모든 과정이 얼른 끝나기를 기다리며 물끄러미 관망하는 아내 앞에서 가족 대화 도전은 멈추었어요. 몇 번 실패를 맛보니 선뜻 도전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에게 가족 대화를 하자고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쫄아서 어설픈 자세로 가족들에게 다가 선 모습도 실패의 한 이유인 듯싶어요. 결국 아빠의 가족 대화 도전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저만의 흑역사로 남았습니다. 그럭저럭 원만한 가족 관계가 더 중요했습니다. 여기서 더 실패하면 가족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생길 것 같았어요. 이후 가족 대화를 소환하기까지 4년이 걸렸습니다.  


그사이 하브루타 교사로서 우직하게 한 길을 걸었지만 가족 대화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함께 나눌 글들은 가족 대화를 실패한 평범한 아빠와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용기가 바닥 나 가정에서 실천할 엄두도 내지 못한 하브루타 아빠가 있고, 남편의 도전을 심드렁하게 바라보며 어디 잘하나 보자하며 관망했던 엄마가 나타날 것이에요. 부부가 함께 좌충우돌하면서 어떻게 가족 대화 그릇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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