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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Aug 29. 2021

실패한 가족 대화에서 배우다

가족의 시간 03


각자도생 생활 방식,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VS 별 탈 없이 지내 왔고, 지금 와서 뭘 바꿔? 사는 건 다 비슷해.


두 입장을 놓고 오늘도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인생엔 하나의 정답이 아닌 다양한 해답이 있듯, 두 질문은 자기주장이 맞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미 힘든 시기를 지나 자녀가 훌쩍 커 버린 가정도 있고, 여전히 오늘도 자녀 양육 문제로 가슴앓이를 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각 가정의 처한 여건과 형편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기도 하고, 새로운 가족 문화를 만들고자 시도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듯, 고단한 삶의 양상과 정도가 다를 뿐, 녹록지 않은 인생살이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각자 스스로 제 살 길을 찾아 애씁니다. 이런 모습을 각자도생이라 부르죠? 때론 내 코가 석자여서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우리의 보금자리, 가정까지 스며든 건 아닐까 넘겨짚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엄마는 엄마, 아빠는 아빠대로 가정에 들어오면 자신만의 영역을 정하고 경계를 짓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면 불편해 하기도 합니다. 불편해 하는 정도를 넘어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기도 합니다. 개인 사생활을 존중해야 하지만 너무 민감하고 예민해진 건 아닐까 우려도 되었습니다. 집에서조차 가족끼리 공유된 생활 양식보다 파편화된 개인의 일상,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앞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녀 방문을 노크하기 전에, 아이들이 불편해 할까, 뭔가 방해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활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배경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부모와 정서적 관계를 맺는 데도 결정적 시기가 있고, 그냥 저절로 신뢰롭고 건강한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가족이 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무엇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각자도생 모습으로 아이들이 십 대 초반, 중반, 후반을 거쳐 성인이 되었을 때 함께 나눌 인생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지 각에 잠기기도 했네요. 뾰족한 해결책, 대안은 없지만 일단 각 방에 흩어진 가족들을 거실에 불러 모아 뭔가를 해 봐야겠다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으면 그 다음 꼭 찾아오는 녀석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실패한 쓰라린 가족대화 경험이 불쑥 튀어나와 거 보라고, 또 또 또 괜한 짓 한다고 제게 면박을 줍니다. 그럴 때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부터 시작하여 인터넷에서 '실패' 관련 명언을 찾아 가족 대화 트라우마 앞에 가서 나도 내세울 게 있다며 반박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장벽에 부딪히거든, 그것이 나에게 절실함을 물어보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마라. -랜디 포시

지난 실수를 잊어라. 실패도 잊어라. 자신이 할 것을 빼놓고 전부 잊어라. 그리고 그 할 것을 실행하라. -윌리엄 듀런트  

패배는 최악의 실패가 아니다.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진짜 실패다. -조지 우드베리  


몇 년 전에는 저 혼자 뜨거웠습니다. 하브루타 교사 경험으로 가족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듯 일방적으로 독주를 하였습니다. 가족대화에 관해선 초보 운전자였던 걸 망각하고, 마치 숙련된 운전자처럼 행세를 했네요. 혼자 엑셀을 세게 밟고 가족들에게 날 믿고 잘 따라오라고 했죠. 가족들에게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왜 그 길을 가야 하는지 묻지도 않은 채 말이에요. 이것이 제가 돌아본 첫 번째 실패 원인이었습니다. 가족대화 횟수가 뜸한 것도 괜찮았고, 가족끼리 대화를 멋지게 못해도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저희 가족의 선생님인 듯 (직업병 맞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다그치고 가르치듯 앞서 나간 것이 문제였습니다. 가족이 더불어 함께 천천히 나아가는 것, 그것이 핵심이지 않을까 했습니다.


두 번째 실패 원인은 아내와 소통하지 않은 채 가족대화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가족대화를 하는 목적은 건강한 가족 관계와 가족의 행복에 있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부부가 공감하고 소통하지 않으면서 뭔가를 한다는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마음은 괜찮은지, 어떻게 가족대화를 디자인하면 좋을지 먼저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내의 태도에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아, 엄마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고 있구나.' 아이들은 엄마의 눈빛과 표정에 담긴 마음을 금방 알아차립니다. 자기들도 하기 싫은데 엄마까지 탐탐치 않게 여긴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은 엄마 쪽으로 기울더라고요. 가정에서는 무엇을 하든 중요한 것은, 단지 그것을 하는 데 있지 않고, 부부가 서로 그것을 왜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충분히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이루는 데 있었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일관되게 한 목소리를 낼 때 아이들에게 안정감과 긍정적인 마음도 고, 때론 투덜거릴 순 있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가는 길임을 수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단지 엄마의 영향이 세서 그렇게 했다기보다는 그저 자기들이 하기 싫은데 그 쪽에 엄마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한번은 주말에 아내가 자전거를 타고 왕숙천에서 팔당까지 가자고 했는데, 제가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될까 가볍게 던졌는데, 아이들이 재빠르게 그 말을 붙잡고 아빠까지 집에 있고 싶어한다고 주말에는 좀 쉬는 게 좋지 않냐고 하면서 아주 강하게 밀어부치는 걸 보았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아이들의 전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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