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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Aug 28. 2021

저희는 각자도생 가족일까요?

가족의 시간 02

다음 장면들은 저희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 풍경입니다. 보는 분에 따라 '도대체 뭐가 문제야? 사는 게 다 그렇지.' 할 수 있습니다. 맞아요. 너무 예민한 것일 수 있습니다. 저희 부부도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다소 불안하면서도 ‘다들 이렇게 사는데 괜히 호들갑떠는 건 아닐까?’ 하는 두 마음이 나란히 공존합니다. 문제라고 여기는 일상을 지인들에게 얘기하면 어느 정도 수긍은 하지만 현실이 어쩔 수 없지 않냐고 합니다. ‘그래, 우리가 민감했어.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해.’ 이렇게 마무리를 짓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상이 정말 자연스럽고 당연한 걸까 질문이 생겼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한번 찾아온 불편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희 가정의 경우, 맞벌이 부부이고, 퇴근 후 집에 와서 밤 10시 정도에 잠들기 전까지 가족들이 함께 머무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4~5시간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 어느 날은 저녁 식사 후 각자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있거나 거실에 함께 있더라도 스마트폰 보다가 누가 자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하루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일상 1

학교 일로 집에 늦게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과 아내가 먼저 저녁을 먹고 나면 저는 퇴근하여 혼자 식사를 합니다. 아내는 집안일로 분주하고 아이들은 자기 방이나 각자 하고 싶은 걸 합니다.


일상 2

주말 저녁에 가족이 함께 거실에 모입니다. 저는 TV 앞, 아내와 첫째 아이는 스마트폰,  둘째 아이는 패드로, 각자 보고 싶은 걸 봅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가 보고 싶은 영상이나 웹툰을 봐요.  다들 웃고 있으나, 웃는 이유는 다 다르죠.


일상 3

가족이 함께 영화 보면서 한바탕 웃고 즐깁니다. 영화를 다같이 본 후에 다시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영화가 어땠는지 이야기는 귀찮아 합니다. '그저 좋았어. 재밌었어. 난 별론데' 등으로 간단히 갈무리합니다. 


일상 4

외식을 할 때가 있죠. 음식을 기다리면서 1인 1폰, 각자 영상을 보거나 카톡, 게임을 합니다. 서로의 얼굴 보는 시간보다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약간 더 많은 것 같았습니다. 분명 밥을 같이 먹은 건 맞는데 뭔가 혼자 밥을 먹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집에 들어와 뿔뿔이 흩어져 편한 자기 방으로 회귀(回歸)합니다.


엄마, 아빠, 아이들이 집에서 각자 하고 싶은 것으로 채우는 일상이 불편했습니다. 어찌할 방법이 없어 혼자 끙끙 앓다가 어렵사리 아내에게 얘기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좀 오버한다고 여겼고, 문제 의식을 떨떠름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마치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각자가 스스로 제 살 길을 찾는다’는 뜻의 각자도생(各自圖生) 사자성어까지 꺼내면서 생뚱맞게 각자도생 가족 같지 않냐고 하니 아내는 당황할 수밖에요.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그래서 뭘 하면 좋은데..." 다시 물었으나 저 역시 딱히 어떻게 해야 할지 뾰족한 대안은 없었습니다. 몇 년 전에 가족 대화를 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기억도 떠오르고, 학교 수업도 아닌 가정의 일상을 제가 어떻게 바꿀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건 아닌데 하는 불편함만이 있었을 뿐이죠. 그래도 아내에게 이렇게 지내도 되는지 열을 올리며 쏟아 낸 말이 있기에 뭔가 해 보려고 궁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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