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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Aug 29. 2021

드디어 아내의 목소리를 듣다

가족의 시간 04

소통과 하브루타에 관해선 제가 전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하던 방식으로 가족들을 이끌려고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4년 전 가족 대화 실패는 뻔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위해서, 가족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했지만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함께 하는 가족들의 상황과 마음을 읽지 않은 채 독불장군처럼 행세하는 모습은 정서적인 거부감을 들게 했습니다.


사실 아내와 조율하면서 가족 대화 문화를 세워간다는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왠지 아내가 흔쾌히 동의하고 지지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바에야 제가 주도적으로 이끄는 방식이 효과적이라 여겼습니다. 물론 결과는 실패였고, 과정 또한 좋지 않았습니다.


다시 도전하는 가족 대화! 아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천천히 조율하며 기초를 쌓고 싶었습니다. 이것을 왜 하려고 하는지, 하면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중간에 만날 문제는 무엇일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제안을 하지만 아내가 협조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은 괜찮으니 당신이 잘해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하게 만날 아내의 반응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지점에서 모든 걸 시작하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 뜻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는 건 욕심이지 않을까 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제가 아예 가족 대화에 대해 아내의 의견을 묻지 않았기에 제가 아내를 방관자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내에게 다시 가족 대화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아내는 반기지도 않았고 반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달라진 점은 환경이었습니다. 가족 대화를 실패했을 때는 첫째가 9살, 둘째가 5살 정도였습니다. 아내의 직장 생활이 힘들었고 육아 부담도 많았던 때였습니다. 가족 대화를 다시 도전한 시점은 첫째가 11살, 둘째가 7살이었기에 이 정도면 다시 해 볼 만한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되기에 가족 대화 실패 원인에 대해 다소 쓴소리를 들을 각오를 하고 아내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몇 년 전에 시도한 가족 대화가 왜 실패했을까?"

  

"음... 솔직하며 말하면 당신 마음이 좀 아플 수 있지만... 그건 당신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이끌어가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하브루타가 생소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어. 왜 해야 하는지 동기부여도 안 된 상태였으니 귀찮고 힘들었지."


"맞아. 나 혼자 앞서 갔어. 느리더라도 당신 의견 들으며 준비했어야 했는데 조율은커녕 다짜고짜 모이게 하고 갑자기 질문을 만들어 보자고 했지. 어설프고 뜨거운 마음만 앞섰어."


 "마치 약장수처럼 혼자 들떠 있던 당신 모습이 눈에 선해. 한 사람만 너무 앞서가면 따라가는 가족들은 좀 힘들어. 아이들도 어렸고 난 지금 힘든데 이게 뭔가 싶었어. 당신이 하브루타 생각만으로 머릿속에 꽉 차 있고 관계보다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듯했어."


"하브루타 이전에 가족들의 상황이나 상태, 눈높이를 살피는 것이 중요했어."


"그래도 실패를 통해 당신이 가족의 마음을 읽으려고 했잖아. 그 후론 대화 이전에 가족 관계를 따듯하게 하려고 노력도 했고."


"누군가에게 보이려 했던 것이 아니었지만, 왠지 밖에서는 하브루타 수업을 하지만 정작 집에선 대화가 없는 삶이 모순돼 보였던 것 같아. 대화를 하며 가족과 행복하게 추억을 쌓자는 목적보다는 마음의 불편함을 지우고 싶었어. 이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상을 만들고 싶어서 다시 도전하는 거야. 그럼, 가족 대화만 놓고 보면 몇 년 전 실패할 때와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은 뭐라고 생각해?"


"이제는 당신과 내가 함께 고민하잖아. 그때는 당신 혼자 했으나 이제는 언제 할지, 어떻게 할지 먼저 내게 물어보고 있어. 질문이 있는 책을 가지고 둘씩 짝을 지어 서로 다른 방에서 하브루타를 하거나 질문 30개 만들어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나. 몇 번 하다가 다들 하기 싫다고 흐지부지 됐잖아."


"맞아. 그때는 애쓰는 아빠 마음은 몰라주고 왜 안 따라와 줄까 섭섭했고, 뜻대로 안 되어 자존심도 상했어."


"당신이 제시한 질문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짝을 지어 대화하는 방식은 쉽지 않았어. 당신은 학교에서 하브루타를 하고 있었지만 나와 아이들은 그렇지 못했잖아. 또한 가족이 함께 모였는데, 질문을 갖고 이야기를 하거나 질문 만들기를 하는 게 왠지 공부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 같아. 편하게 대화해야 하는데, 공부하는 기분이 들면 하기도 싫고, 한두 번은 이벤트식으로 할 수 있어도, 계속할 수는 없지."



“대화를 하는데 공부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아내의 말이 계속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남편과 아빠가 아닌 마치 가정이 학교 양 집에서까지 누군가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단순히 질문을 만드는 활동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가족들이 그 활동에 공감하며 편하게 수용하는지, 소화가 가능한지 여부가 중요했습니다. 어떤 활동이든 아빠나 엄마의 욕심이 앞서 무리하게 추진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는 점도 소중한 교훈이었습니다. 그간 학교에서 실천했던 하브루타 활동은 우리 가정과는 맞지 않는 옷이었습니다. 수업 때 아이들이 좋아했거나 다른 가정에서 실천한 사례라도 저희 가정에 맞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희 가정만의 특징과 상황에 맞게 새롭게 가족 대화를 디자인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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