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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Aug 29. 2021

거실에 모이는 연습

가족의 시간 05

앞서 저희 가족의 각자도생 일상을 나누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집에 머물더라도 각자가 스마트폰 붙잡고 있거나 자기 방에서 하고 싶은 무엇을 하며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런 일상이 저희 가족의 문화가 되는 현실이 불편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몇 년 전 가족대화 실패 이야기를 꺼내면서 처음으로 아내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준 제 실수와 연약한 점을 만났습니다. 이제는 아내와 조율하면서 천천히 가족의 시간을 만들고, 가족의 문화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자기 일상을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내도 직장에서 어땠는지 모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결국 서로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꺼낼 때에만 서로에게 숨겨진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유튜브에서 어느 가족이 25인승 버스를 개조하여 약 30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하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울산에서 속초로, 거기서 배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세계 여러 나라를 거쳐 포루투칼을 찍고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공유된, 공통된 경험, 추억이 아마도 최고의 선물이지 않을까 했습니다. 가족의 용기가 대단했고, 건강하게 모든 여정을 마친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했으나 1년 이상 모든 걸 접고 가족 여행을 한다는 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 가족만의 추억을 쌓으면 어떨까 했습니다. 아이들과 부모와의 친밀하고 인격적인 정서적 관계를 건강하게 빚어가는 과정도 저희 부부에게 중요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인생을 돌아보면서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 공감을 했습니다. 아내와 여러 차례 대화를 하면서 각자도생 스타일과 이별하고 저희 가족만의 문화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몇 개의 문장으로 조율 과정을 정리하지만 사실 이 과정이 가장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나 저나 한번도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도 가족끼리 거실에 모여 자기 일상을 나누는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사는 데 바빴고 살아내는 그 자체가 중요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거실에 모이는 연습을 했습니다. 각 방에 흩어진 가족들이 거실에 모였습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하실 수 있지만 저희에겐 일상 혁명이었습니다. 익숙해지기까지 시행착오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 연습은 저희 부부에겐 낯설었고 아이들은 하기 싫어했습니다. 거실에 모여 보자고 했을 때, 아이들은 자유를 달라고 외쳤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혼자 있고 싶을 권리,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권리를 얘기했습니다. 아빠로서 아이들이 혼자 있는 공간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일상을 뺏을 의도는 없었습니다. 다만, 하루에 한 번 거실에 모여 오늘 하루 자신의 이야기를 할 이유가 있었기에 괜히 유난 떠는 것 같아 서로의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딱 한 달만 해 보자며 시작했던 것이죠.

 

왜 우리를 ‘가족’이라 부를까?

같은 공간에 모여 살면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같은 공간에 모여 살지만 마음과 생각을 나누지 않아도,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찾고 싶었습니다. 하루 중 (주로 저녁 8시 정도에) 시간 약속을 하여 거실이라는 장소에 모이는 것부터 연습했습니다. 한 달만 해보자 도전은 지금까지 약 2년 정도 서로의 하루 이야기를 듣는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저희가 반복한 이 과정을 ‘거실가족대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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