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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Aug 30. 2021

가족 대화 그릇에 깊어진 삶의 이야기를 담다

가족의 시간 06

저희 가족은 약 2년 전, 2019년 4월부터 거실에 모이는 연습을 했고,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3분 동안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가족 대화를 시작한 후 100일 정도 지났을 무렵 아내는 아이들이 가족 대화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다며 걱정을 했습니다. 


"둘째가 하루 이야기하는 것을 힘들어해. 자기 이야기를 몸으로만 표현하려 하고 정리된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워해. 첫째는 왜 가족 대화를 해야 하는지 계속 따지고. 이것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해. 아이들이 제대로 듣고 있기는 한 것인지도 모르겠어."
"첫째가 가족 대화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 건 그 자체가 싫어서는 아닐 거야. 자기 시간을 좀 더 많이 갖고 싶은 거지. 가족 대화가 길게 늘어지지 않게 끝나는 시간을 정확하게 정하면 어떨까 해. 둘째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억나는 일을 표현한다고 보면 어떨까? 몸동작도 소통 방식의 하나잖아."
"생각해 보니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첫째가 나한테 달려와서 빨리 가족 대화 하자고, 할 말이 많다면서 재촉하기도 했어. 그날은 가족 대화를 마치고도 첫째가 계속 이야기를 했어." 
"나도 아이들에게 가족 대화란 뭘까 가끔 생각해. 바라기는 가족 대화 시간이 좋아서 기다려진다는 말을 듣고 싶지만 그렇지는 못해서 아쉬워. 가족 대화가 유튜브, 게임, 웹툰 등을 편하게 보는 것과는 다르잖아. 아이들이 가족 대화를 반기지 않더라도 자기 차례가 오면 곧잘 얘기하고 표정도 괜찮아."


아이들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자기 시간을 편하게 사용하기를 바라잖아요. 가족 대화는 자기만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거실에 나와 가족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입니다. 아이들이 자기 경험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보이는 모습이 부모의 바람이나 기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 대화 그릇을 빚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적응 과정이라 보고 싶습니다.


가족 대화를 실천하든 하지 않든, 저희 부부는 계속 나이를 먹을 것이고, 아이들도 자라 머지않아 부모 품을 떠나가겠죠?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저희 부부의 고민과 가슴앓이를 이해할 순 없을 것이에요. 언젠가 아이들이 부모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각자의 ‘깊어진 삶’을 이야기하는 인생의 계절은 찾아올 것을 믿어요. 그때 하루하루 빚어낸 가족 대화 그릇에 서로의 깊어진 삶을 담고 싶습니다.

 

‘가족 대화 그릇’은 가족들의 일상생활 방식과 반복된 습관으로 만들어집니다. 10년, 20년 후면 저는 세월의 바람을 맞으며 늙어갈 것이고,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제게는 소박한 꿈이 있습니다. 삼 대가 거실에 모여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가족 대화 문화를 설계하고 실천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고, 그런 문화를 일상에서 경험한 아빠와 엄마와 아이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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