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대화 그릇을 빚는 일상 01
초4 아들이 처음으로 내가 쓴 책을 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평소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어?"라는 질문으로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짧은 시간을 갖고 있는데 오늘따라 갑자기 아들이 가족 대화를 하기 전에 오늘은 아빠 책으로 토론하자는 얘기를 한 것이다.
처음엔 농담인가 싶었다. <하브루타 디베이트 밀키트>(고현승, 정진우 공저 / 글라이더)는 2022년 8월에 출간한 책이었다. 책이 나왔어도 아내에게만 축하를 받았다. 딸과 아들은 책 출간에 관심이 없었다. 그건 아빠의 일이었다. 나도 아이들의 무덤덤한 반응이 섭섭하지 않았다. 장르도 문학이 아닌 비문학, 가정 실용서 정도였고, 내용도 가족이 함께 모였을 때 함께 나눌 수 있는 하브루타와 디베이트 질문과 예시를 담은 책이어서 아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아들이 내 방에 10권 이상 쌓여 있는 책에서 한 권 쓰윽 빼오더니 여기서 토론 할 거를 찾아보자고 하는 게 아닌가. 물론 아들이 책 내용이 좋아서 그런 제안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 하루 일상을 말하는 것과는 다른 뭔가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동기야 어떻든 아들이 출간된 지 약 9개월이 지난 아빠의 책을 꺼내온 일, 책을 들춰 보면서 토론 주제를 찾는 모습, "책은 보고 싶을 때 읽어야 한다"는 논제를 선택한 것까지 그런 아들의 행동과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아들의 동기와 목적과 관계 없이 그냥 기뻐하는 내 모습을 보니 약간 짠하기도 했으나 이 역시 내겐 행복의 이유가 되는 건 분명했다. <하브루타 디베이트 밀키트>의 내용을 실제로 직접 우리 가정에 활용한 역사적인 날이어서 감동이 밀려왔다. 오늘 같은 아들의 제안은 처음이지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만, 언젠가 "아빠, 아빠 책읽고 이야기 해요."라고 할 그런 날을 살짝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