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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현승 May 15. 2023

가족 대화 그릇에 무엇을 담을까?

가족 대화 그릇을 빚는 일상 03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들이 오늘은 가족 대화 시간에 부루마블 보드 게임을 하자고 했다. 순간 잠시 고민을 했다. 나는 오늘 가족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가족의 목소리로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부루마블 게임이 재미 없었다. 부루마블은 주사위를 던져 결정되는 것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복불복 성격이 강한 게임이어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둘째가 엄마와 아빠를 설득하더라도 누나에게 거절당하기 일쑤여서 누나에게 제안하는 과정에서 겪는 실랑이가 뻔히 예상되었기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싫은 티를 내지 않은 채 옷을 갈아 입으면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아내에게 살짝 물어보니 아내는 대세에 따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가족 대화를 한다고 해서 매일 거실에서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 24시간 중, 그래도 개인의 시간을 넘어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는 되어야 균형 있는 삶이 가꾸어진다고 생각했다. 가족 대화 그릇을 빚기 전에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하루가 마무리되는 풍경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아내의 반응도 확인하고 이제는 둘째의 제안에 이야기를 할 타이밍이 왔다. 둘째는 벌써 자기 방에서 부루마블을 들고 나와 거실 식탁에 올려놓았다. 이를 본 첫째는 대충 동생이 무엇을 제안했는지 파악한 상황이었다. 부루마블은 시간 제한을 두지 않으면 한두 시간은 훌쩍 넘기는 게임이라 첫째는 평소 가족 대화를 하는 시간만큼만 게임을 하자고 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누나가 동생을 넓은 마음으로 배려한 것이다. 둘째는 이 정도면 누나의 마음을 읽고 게임 시간을 적당히 정해야 했는데 40분이나 하자고 했다. 이때 약간 갈등의 기운이 감돌았다. 첫째는 평소 가족 대화를 20분에서 길면 40분 하는데 40분을 하면 어떡하냐고 동생에게 따졌다. 둘째는 누나의 단호한 태도를 읽었는지 35분으로 약간 줄였다. 우여곡절 끝에 35분 타이머를 맞추고 부루마블을 했다. 


가족 대화 그릇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할까? 반드시 가족이 모여 오늘 하루 일상을 나누는 것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드 게임을 하면서 가족이 함께 웃고 이야기하는 것도 꽤나 의미 있는 일이다. 문제는 보드 게임을 하는 것조차 가족의 구별된 시간을 갖지 않으면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저마다 하고 싶은 보드 게임이 다르고, 더더욱 보드 게임보다 자기 방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게 편하고 재밌어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족의 시간으로 함께 모이니 그렇게 구별된 시간에 담는 것은 가족 대화, 토론, 보드 게임 등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게 되었다. 내 경우는 가족이 서로 하루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둘째는 보드 게임이나 뭔가 색다른 것을 하길 원했다. 그런 바람을 가진 둘째가 적극적으로 뭔가를 제안할 때 흔쾌히 수용하는 편이다. 가족이 함께 한다는 전제가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35분 타이머를 맞춘 채 시작한 부루마블은 딸과 아내 팀의 역전 승리로 끝났다.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가까워졌다. 요즘 들어 아들이 가족 대화를 대신에 특별 활동(?)을 제안하는 횟수가 제법 늘었다. 무엇을 제안하든 가족이 함께 모이면 행복하다. 아내와 초4, 중2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참 좋다.   


p.s : 둘째가 한창 게임을 하는 도중 갑자기 "이거 나만 재밌는 거 아니지?" 물었다. 순간 아내와 딸과 나는 서로 바라보면서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둘째는 이미 우리 마음 속 답을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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