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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Mar 13. 2018

저는 사람의 눈을 꼭 봐요

어느 빠른 94년생의 이야기 ①

※ 인터뷰를 토대로 쓴 글입니다.



강도담(가명)씨는 얼마 전 오랜 시간의 학업을 끝마쳤다. 자기는 말이 좋아 학업이지 그냥 대입(대학교 입학 준비)이라 해달란다. 햇수로는 5년, 그의 의견을 받들어 고등학교 3년을 합치자면 8년이겠다. 그는 재수, 삼수에 실패했고, 2015년엔 편입을 목표로 동국대 전산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3년 후인 올해 2월,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에 편입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이 끝났다. 그는 이 8년의 시간을 지옥 같은 보람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인터뷰에 앞서 어떤 이야기를 꼭 준비해달라 부탁하거나 특정 질문을 미리 보내주지 않는다. 문답 형식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그저 이야기를 나누어 자연스레 한 사람의 이야기를 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나는 자기소개 정도만 ‘간단’하게 생각해 와달라 부탁한다. 부담 갖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예시도 준다. 예시는 이렇다. 


“저는 몇 살 누구고요~ 현재는 이거랑 저거랑 하고 있습니다.” 


정말 간단하게 준다.          

그런데 “안녕하십니까” 이후로 이어진 그의 자기소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거창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모든 인간관계를 시작할 때, 사람의 눈을 꼭 봅니다.”     




# 스스로에게 유예를 주자.................................................................... 1

이야기는 화두는 자연스레 그쪽으로 흘렀다.


강도담 씨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자신에게 일종의 유예를 준다. 즉, 이 사람과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별할 시간을 사전에 갖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의 눈을 보는 것이 사람을 판별하는 그만의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눈을 보는 것이 상대의 진심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사전에 상대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면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고 한다. 


미지근한 나의 반응에 그는 그의 방법이 첫인상만으로 누군가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오만한 태도로 보일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유예를 주는 방법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모두 "좋았다"라고 말했다. 실패란 없는 확실한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비록 여러 좋은 사람들을 놓쳤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의 방법은 그에게 유용하고 근사한 방법이었다.


Chez le pere Lathuille(At Père Lathuille’s), Edouard Manet, 1879

       


그가 유예를 두는 데는 계기가 있었다. 

그 계기를 듣고 나니, 상처로부터 이런저런 고심을 반복했고 다짐을 했을 그가 상상됐다. 

     

관계에 대한 배신이었다. 이번 연도 편입을 준비할 당시 그에겐 편입에 관한 자료가 많았다고 한다. 그의 말로는 편입에 있어서 정보력은 굉장히 중요하단다. 그런 그에게 참으로 많은 사람이 접근했다. 그중 그가 가장 실망감을 내비쳤던 한 사람(이하 박씨)의 얘기를 하자면 이렇다.      


박 씨는 자료를 얻고는 편입 시험까지의 두 달여 동안 그림자도 내비치지 않았다. 감기에 걸렸다는 카톡만 했을 뿐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박 씨를 같은 시험장(보건과학분야)에서 마주쳤다는 것이다. 강도담 씨가 알기론 박 씨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도담 씨는 이전에 자신의 관심 있는 분야와 꿈, 그리고 동기 같은 것들을 마음 터놓고 얘기했던 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도담 씨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사용했다는 의구심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의구심은 점차 실망으로, 상처로 변해갔다.     


개인적인 잣대로 뒤에서 누군가를 판별하는 그의 방법이 혹자에겐 기회주의적으로 들릴 수 있다. 누군가 내 언행 하나하나를 속내로 판단하고 평가한다고 생각하면 불편한 건 사실인 것 같다.


반면 누군가는 그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SNS에서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 '진짜 친구 구별법' 등의 글들을 여러 번 본 바 있다. 모든 사람들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없다고는 못하겠다. 혹시나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나 같은 경우는 긴 기간을 두고 사람을 알아가며 나와 맞지 않으면 자연스레 거리를 둔다(되도록이면 그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말이다). 강도담 씨처럼 관계를 맺기 이전에 사람을 유심히 보아 관계 여부를 결정지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단지 정도와 시기가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brunch.co.kr/@5moon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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