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파티쉐의 이야기
# 본 글은 인터뷰를 토대로 쓴 글입니다.
최정현(가명, 26) 씨는 1993년 12월 3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울에서 파티쉐로 일하고 있다.
나와는 유럽여행 중 인연이 됐다. 체코의 프라하였다. 우리가 만났을 때 그는 여행의 끝을 앞두고 있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우리는 프라하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길이 엇갈리고 말았다. 내가 유심칩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는 후문, 나는 정문. 우리는 각기 다른 곳에서 서로를 30분 여 기다렸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약간의 원망' 속에서 헤어졌던 우리는 시간이 지나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인생에 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틈을 부정적으로 여길 때가 많다. 무언가 새는 곳, 메꾸어야 하는 곳으로 여긴다. 하지만 상상해보라. 틈이 없는 공간은 그 어느 곳보다도 답답할 것이다. 틈은 우리의 숨통을 트여준다. 틈이 없는 완벽함 혹은 그런 인생보다는 완벽하지 않을지 몰라도 조금의 여유를 가지는 삶은 어떨까. 가끔은 자신의 미숙함에 관대할 줄도 알고, 누구를 품어줄 수 있는 틈을 가진 사람 말이다. 그래서 나는 틈을 출구(出口)로 해석하고 싶다. 삶에 지쳐 무기력할 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낄 때, 그 안에서 곪지 않도록 하는 출구 말이다.
정현 씨는 틈이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 파티쉐인 그의 인생엔 '여행'이라는 틈이 있다. 그에게 여행은 행했던 일상을 돌아보는 가치 있는 시간이며, 삶을 유연케하는 기제다.
여행이 최정현 씨의 삶의 틈으로 받아들여진 때는 불과 3년 전이다. 이전까지는 케이크를 만드는 것이 그에게 있어 틈이었다. 학창 시절, 그에게 케이크를 만드는 것은 즐거움 자체였다. 성공뿐 아니라 실패에도 그저 즐거웠다. 그러나 그것이 직업이 된 순간, 틈은 메꿔졌다.
최정현 씨의 꿈은 줄곧 같았다. 어릴 적부터 케이크를 만드는 방송을 즐겨봤다. 올리브 tv의 'the [keik]'는 그가 가장 좋아했던 방송이다. 그때부터 그는 용돈을 모아 주방을 제과제빵 기구들로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의 수첩은 날이 갈수록 그 길이와 깊이를 더했다.
물론 그의 길이 마냥 밝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길에 비치는 햇빛을 막은 것은 부모님의 걱정이었다.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몸 쓰는 일을 안 했으면 했다. 부모의 사랑이 자녀의 실망을 만드는 아이러니. 그런 그는 조리고 진학을 희망했으나, 일반고로 진학하게 됐다. 3년 간의 공부 끝에 수능을 봤다. 하지만 수능 이후 그가 쓴 것은 대학 원서가 아닌, 아버지에게 줄 장문의 편지였다.
장문의 편지의 효과일까 자식에 대한 믿음일까. 아버지는 그의 꿈을 인정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간 학원에서 자격증을 취득했고, 이후 안산에 있는 제과제빵 전문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2년 간 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대회도 나갔고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렇게 정현 씨는 파티쉐가 됐다.
틈이 메꿔지기 시작한 것은 22살 당시, 취업을 한 이후다. 취업을 한 이후 케이크를 만드는 일에서는 여유를 취할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일이 됐기 때문이었다. 케이크를 만드는 작업 자체는 변하지 않았으나 환경이 달라졌다. 기준이 새겨졌고, 성과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더 많은 케이크를 만들고 싶은 욕심뿐이었고, 만들어야만 했다. 목표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한 들 또 다른 목표가 생길 뿐이었다.
정현 씨는 빈틈없는 완벽함을 추구하게 됐다. 빈틈없는 공간 속에서 그는 곪아갔다. 조금의 어긋남에도 크게 휘청거렸다. 아찔한 외줄 타기 같은 삶이었다. 한 순간에 추락할 것만 같았다.
"점장님이 나를 불러서 이야기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어렵게 되어 그만두어줘야겠다는 말을 들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변환점은 우연히 찾아왔다. 권고사직이었다. 그가 일하던 지점이 매출 부족으로 문을 닫게 된 것이었다. 그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게 됐다. 행선지는 제주도였다.
"생생히 기억나는 건 공항에 내려서 처음으로 간 목적지가 협재해수욕장이었다. 비양도라는 섬을 보면서 들었던 노래가 버벌진트의 '시작이 좋아'란 노래였다. 한참을 울었다. 정리가 되었다기 보단 마음을 비워냈다. 나를 위로했다."
우연한 나 홀로 여행은 자그마한 숨구멍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는 틈의 필요성을 알게 됐다. 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중간중간 여행을 다녔다. 가까운 곳부터 시작했다. 2일을 연달아 쉬는 날이면 어디를 갈까 고민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일을 멈추어두고 틈이라는 출구로 빠져나오기도 했다. 50일간의 유럽 여행이었다. 주변에서는 "일을 한동안 쉬어버리면 경력이 비어버린다", "다른 사람들은 계속 경력을 쌓고 있는데 진짜 갈 거냐"란 말을 늘어놓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여행은 나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콘크리트는 단단한 반면, 나무에는 틈이 있다. 100년 넘은 집 중 콘크리트 집을 보기란 정말 힘들다고 한다. 대부분 나무로 된 집이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건물은 개선도 어렵다고 한다. 한쪽을 건들려고 하면 건물이 통째로 흔들리기 때문이다. 다 부수고 다시 지어야만 한다. 반면 나무집은 톱만 있으면 된다. 살아가면서 언제든 내 스타일에 맞게 고쳐나갈 수 있다.
인생도 비슷한 것 같다. 틈이 있어야 우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새로움도 포용할 줄 알게 된다. 여행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 다르 듯, 그 방법 또한 다양할 것이다. 나의 틈은 매일 밤 자기 전 '시 한 편을 읽는 순간'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순간 나는 나를 얽매이는 것들에서 벗어나 그 날의 나와 되새기고 앞으로를 다짐한다.
정현 씨는 이번에 케이크를 만들어 온 과거를 틀었다. 그는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잘 모르지만, 빵과 케이크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한다. 그는 여행에서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없었다면, 더 거슬러 올라가 그때 권고사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쉽게 빵을 만드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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