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
먼 나라 이웃 나라는 참 많지만 형제의 나라라는 표현이 더욱 익숙한 국가는 딱 하나 뿐이다.
옆 집 사는 이웃보다 더 가까운 호칭을 쓰는 유일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내게 그저 콘스탄티누스가 세운 동로마제국의 정치적 수도, 혹은 유스티아누스 1세가 동방 정교회를 위해 지은 아야 소피아가 있는 나라일 뿐이었다.
지극히 로마인 입장임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국경 없이 자유로이 드나드는 유럽연합에서 지내다보니 여권 심사를 거치고 도장도 찍어주는 나라는 오랜만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설레었던 것도 잠시.. 도착하자마자 형제라 불리우는 그들에게 80tl(약 2만원..)의 택시 사기를 당했다. 중범죄가 아닌 사기는 액수보다 기분 나쁜게 더 문제다. 그럼에도 여행을 떠났을 때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긍정마인드 '액땜'를 십분 발휘하여 금세 회복했다.
이전에 로마 모스크에 관한 글을 썼을 때 사진으로 접했던 블루 모스크
구글로 검색하며 사실 그래픽 처리된거라고 지레짐작 했었는데.. 그래픽이라 오해할만큼 신비로운 건축물을 호텔 식당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세상이 좁은건지 내 보폭이 커진건지 잘 모르겠다.
정식 명칭은 Sultan Ahmet Mosque 술탄 아흐멧 모스크인데 내부 장식이 푸른 빛이라 통칭 블루모스크라 불리운다. 내외관의 아름다움보다도 놀라운 것은 1609년에 착공하여 1616년에 완공한, 즉 겨우 7년만에 세워 올린 건축이라는 사실이다.
근데 1세기 건축물인 콜로세움의 공사기간이 5년(설계까지는 8년)이었음을 감안하면 뭐.. 15세기쯤에 저정도는 불가능한 것도 아닌 것 같다.
또한 현재 건설회사들이 같은 크기의 건축을 세워올렸을 때 몇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현대사람들이 다 선진 문명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술탄 아흐멧 광장을 가운데 두고 블루 모스크와 마주하고 있는 건축 'Hagia Sophia' 아야 소피아
기원 후 537년 유스티아누스 1세에 의해 초기 동방 정교회 성당으로 지어진 '성스러운 지혜' 라는 뜻의 건축물이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중인데 결단코 (로마의 콜로세움만큼이나!!) 아야소피아를 보지 않고서는 이스탄불을 다녀왔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도시를 가장 대표하는 건축이며, 건축 당시 당대 최고의 모든 기술력을 응집하여 한계를 뛰어넘은 예술작품과 같다.
이유를 로마 판테온과 비교하여 살펴보면 이러하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둥없이 벽체로만 세운 건축양식 돔이 실현된 로마 판테온은 43.3m 지름의 구가 쏙 들어가는 형태로 건축되었다.
현재까지도 철근 콘크리스가 아닌 돔 중에서는 최초이자 최고인 동시에 최대의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다. 약 1,800년의 오랜 세월 동안 지속가능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벽체 자체의 두께가 어마어마하다. 무려 6m....! 게다가 돔의 무게를 일관되게 나누기 위하여 외부에서 보면 원통형 구조 위에 반구가 올려져있는 모습이다.
그에 비해 아야소피아의 내부 구조는 이러하다.
판테온처럼 두꺼운 벽체가 천장의 돔의 무게를 나누는 것이 아닌 4개의 아치로 돔을 떠받치고 있는 구조로 건설되어있다. 설명을 듣고 또 비교하며 감상하니 정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건축 전공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실제 건축을 마주하고 그 오랜 역사가 뿜어내는 웅장함을 오감으로 느끼게 되면 수동적으로 느끼는 숭고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알 수 있다. 나아가 숭고의 원천은 공포라는 것까지.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는 유사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이슬람을 들여온 오스만 투르크족의 민족성에 기원한다.
1453년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투르크족은 원래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 다니던 유목민 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형 건축물이 필요도, 그에 따른 능력도 전무했다. 따라서 이스탄불 점령 이후 그들에게 있어 유일한 대형 건축물이었던 아야소피아 성당을 앞으로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될 것을 선포하게 된다. (마치 기원 후 313년 콘스탄티누스에 의한 기독교 공인 이후 로마 제국이 시장, 법원 등으로 사용하던 그리스식 건축 양식 바실리카를 기초로 두고 성당을 건설했던 것과 유사하다.) 그렇다보니 이후 또다른 사원을 건설할 때에도 유일무이한 대형건축물 아야 소피아를 기초로 두고 이슬람 사원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모스크들이 동글 동글한 돔들이 연결되고 그 바깥으로는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을 위한 첨탑들 미나레트가 있어 모두 유사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보니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 건설에 약 1,000년의 시간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관이 매우 유사하다.
'아야 소피아가 백자와 같다면 블루 모스크는 청자와 같다'고 하더라.
아무튼 권력의 이동으로 인해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만남은 아야 소피아에서 이뤄지게 되었고 그에 따른 놀라운 결과물이 이러하다.
성모자상 모자이크로 장식된 돔의 모습과 8m의 대형 목판에 그려진 알라(이슬람의 신) 캘리그라피라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랜 역사 속 많은 이들의 염원이 빼곡히 모여든 곳이라 그런지 한 자리에 우뚝 서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문학을 전공한 덕분에 종교에 관한 의심을 오래도록 가득 품었던 나인데 최근 터키 여행에서 성모 마리아가 순교 직전까지 머물렀던 집과 또 여러 모스크들을 둘러보며 내 의심을 다시 의심했다. 과학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기에 재고 따지고 하지 못한다는 건 1차원적인 반발심이라는 것과 종교를 가진 이들이 어떤 부정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지를 보며 손가락질하거나 일반화할 필요 없다는 것. 설사 그게 정말 인간의 창조자나 구원자의 말이 아니다 하더라도, 권선징악을 보여주는 더 오래되고 복잡다단한 소설에 불과할지라도 나 스스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신이 인간에게 전하고자 하는 그 선하고 맑은 영향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나쁠 게 없다는 .. 나로써는 굉장히 놀라운 방향의 생각이었다.
아무튼 여러모로 여행을 삶에 영감을 준다.
신의 이름을 내세우며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자는 목적으로 나섰던 십자군 원정. 결과는 처참했다. 물론 전쟁에 패배하기도 했지만 다른 지역의 같은 종교끼리 서로의 보물을 빼앗던 약탈로 인해 목적이 불순해졌기 때문이다. 4차 십자군 때 베네치아인들에 의해 이스탄불의 많은 보물들이 사라지고 아야소피아 내부도 꽤나 뜯겨졌다고 한다.
이후 아야소피아를 점령하였던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내에서 우상 숭배가 금하기 때문에 회반죽을 발라 모자이크를 지우거나 천으로 덮어 가려놓긴 했지만 타 종교를 존중하고 역사적 가치를 인정했기에 '완전히' 없애버리지는 않았다.
인간이 신을 경배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성당과 모스크 나아가 모든 신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뺏고 빼앗기던 같은 종교인들과 지켜주고 보호해주던 다른 종교인들 사이에서 또 한번 신의 존재를 떠올려 본다.
복원 중인지 내부 공사가 한창이라 사진이 많지 않다. 전체적인 모습을 보려면 몇 십년은 걸리겠지..? 눈물을 훔치며 언젠가 다시 돌아올 그 날을 기약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