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이탈리아 사람들은 도시의 색감을 존중합니다.
이탈리아가 예술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났던 르네상스 시기에는 '조화'와 '균형'을 최우선시 하였는데,
그래서인지 (물론 공급의 문제도 있었지만!) 새로운 건축을 할때 이전 건물 자재들이 가진 색감의 균형을 깨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리기를 원했죠.
그 노력의 결과물들이 지금의 이탈리아를 더욱 사랑스럽게 하지 않았나 합니다.
붉은 벽돌의 도시 시에나,
빨간 지붕의 도시 피렌체,
그리고 영원의 도시 로마까지,
라면 참 좋았겠지만
흙빛의 건물이 흘러넘치는 로마에서 도시의 오점이라 불리우는 건축이 하나 있었으니.. 사진상으로 오른쪽 상단에 있는 조국의 제단입니다.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1925년 완공된 건물로 새하얗게 아름다운 전면부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스카이라인에서 보면 도시에 불균형을 자아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평균 나이 500살 많게는 2,000살까지 넘나드는 격조높은 로마건축물들 사이에서 대략 100년이 안되는 짧은 역사와 더불어 하얀 대리석이 너무 눈에 띈다며 볼품없는 웨딩케이크 같다, 피아노 건반을 만든 건물이다, 등의 갖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역사가 깊은 고대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자부심은 현대와 멀어져야만 한다는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얀콘크리트와 창이 넓은 건물을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동시에 현대건축을 보물처럼 찾아다니는 나름의 재미를 주기도 합니다. 물론 숨겨진 보물처럼 정말 몇 없지만 말이죠.
아무튼 생각보다 길어진 서론을 마무리 하고 소개하고자 하는 로마의 건축물을 먼저 보여드립니다.
언뜻보면 깔끔한 외관으로 마치 미술관같아 보이지만 사실 가장 로마답고 로마스러운 건물인 '성당'입니다.
The Jubilee Church/ 희년의 성당
The Church of 2000
La Chiesa del Dio Padre Misericordioso/ Parish of God the Merciful Father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성당은 요한 바로오 2세 교황님이 재위하셨던 1996년
희년이 선포되는 2,000년을 기념하는 것과 동시에 현대건축으로 교외 지역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했던 로마 교구의 의뢰로 시작됩니다.
이로써 세계적인 현대건축가들이 경쟁을 하며 각각의 설계를 하게 되는데요-
당시 참여 건축가들이 엄청납니다.
21세기 아크로폴리스라 불리우는 LA 게티센터를 설계한 미국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
노출 콘크리트 상용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
빌바오 구겐하임을 설계한 캐나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
베를린 유대인 추모비를 설계한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
이외에도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독일 건축가 귄터 베니쉬 등으로 절반이상이
건축계의 노벨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건축가들이었죠.
내놓라하는 건축가들 중 고대도시 로마에 가장 현대적인 건물을 짓는 영광은
백색의 거장 리차드 마이어 가 쥐게 됩니다.
" I think white is the most wonderful color of all,
because within it one can fine every color of the rainbow. "
좌측의 사각형 건물은 5개의 종이 일렬로 세워진 종탑이 자리하고 있고
우측으로는 성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같은 지름의 새하얀 3개의 반구가 마치 단단한 뼈대의 역할을 하고 그 사이가 넓은 유리창으로 메꿔져 있습니다.
첫 눈에 보기에는 독특한 외관이지만 유리창에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흐름이 비치고 주변경관까지 담아 굉장히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건물의 후면에 사각형의 건물이 또 하나 서 있습니다.
이는 성당의 내부에서 중앙 제단의 뒷편에 자리하게 되어
쏟아지는 햇살과 함께할 때 더없이 신성한 모습을 자아냅니다.
중앙제단 맞은편 오르간
성당을 감쌌던 3개의 반구는 성당 내부에 '열린 듯 닫힌' 공간을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감탄했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 내부로는 작은 규모의 제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은 틈새로 번지는 햇살은 콘크리트 벽으로 쌓인 성당에 오히려 따뜻함이 감도는 아주 독특한 경험을 줍니다.
작은 제단 뒷편으로 고해성사를 위한 공간
개별적인 공간이지만 쏟아지는 자연의 빛은 성당의 전체 공간이 하나로 묶이는 듯 유기적인 통일성을 줍니다.
다시 봐도 감동적입니다.
의자와 성당 벽을 넓게 채운 나무들에 반사되는 빛은 자칫 무겁고 차가운 느낌을 줄 수 있는 성당을 안정적이고 포근한 느낌으로 바꿔줍니다.
문득 한밤 중에는 어떠한 느낌일까 궁금하네요
성당의 어느 부분을 봐도 잘 정돈되고 완벽히 분배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This structure is a testament to the monumental work of men in the service of spiritual aspirations.
Richard Meier, Architect
실제로 리차드 마이어의 다이어그램으로 정리될 정도로 체계적이고 수학적인 계산과 더불어 빛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설계로 유명합니다.
그만큼 구형과 구의 재분배, 그 틈을 메꾸는 유리들이 자연의 미묘한 변화 섬세하게 반응하는 The Jubilee Church 희년의 성당,
로마 시에 미국 건축가가 세운 최초의 건물이며 현재까지도 리차드 마이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의미있는 성당건축이기도 합니다.
그에 힘 입은 듯 2006년 로마 시내 중심에 평화의 제단 미술관도 건축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리차드 마이어는 미국을 기반으로 하여 전 세계에 수 백개의 건축 설계를 하는데요.
그 중 하나가 2015년 리모델링된 강릉의 SEAMARQ 씨마크 호텔입니다.
알리바바 마윈 회장이 평창올림픽 방한때 묵어서 유명해진 호텔이기도 하죠.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씨마크 호텔 펜트하우스 설치된 조명의 디자이너가 소개해드린 희년의 성당 설계에 함께 참여했던 프랭크 게리입니다.
여러 번 생각하지만 건축가들은 참 멋집니다.
지난 겨울 방영되었던 '알쓸신잡2'에 출연해 건축학개론의 소소한 붐을 일으켰던 건축가 유현준도
학업을 마친 후 리차드 마이어의 사무소에서 실무를 했다고 하네요.
물론 기술발전으로 인해 더이상 건축이 기술집약체가 아니고 각 국가만의 특징을 담아내지도 않지만
오히려 지금의 현대건축이 더 넓은 의미에서 문화, 정치, 경제, 사회, 기술, 예술, 문화인류학의 세계적인 흐름을 알 수 있게 하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어 로마 카톨릭 교구에서 미국인 건축가에게 로마 내에 희년을 기념할 성당 건축설계를 맡기는 것,
흙빛의 벽돌과 대리석이 넘실거리는 로마에도 새하얀 콘크리트의 건축이 들어서기 시작한다는 흐름.. 말이죠!
여러 번의 여행으로 로마가 너무 익숙하게 느껴질 때
벽돌과 대리석보단 차가운 콘크리트와 유리의 건물이 그리울 때
2,000년의 역사를 품은 고대 도시에서 2,000년에 세워진 현대건축이 주는 신선함을 느끼고 싶을 때
앞으로 오랜 역사를 품게 될 성당을 미리 가보는 건 어떨까요-
The Jubilee Church
The Church of 2000
La Chiesa del Dio Padre Misericordioso/ Parish of God the Merciful Father
위치 : Piazza Largo Terzo Millennio, 8, 00155 Roma RM
시간 : 7:30am - 12:20pm / 16pm - 19:30pm
미사 : 9am/ 18:30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