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정원담(談) - 도시 속 작은 숲 이야기
주말 아침엔 늘 늦잠이 자고 싶었다. 일찍 눈이 떠진 날은 누워서 뒹굴뒹굴하는 시간을 보내야 바빴던 주중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았다. 정원을 본격적으로 가꾸기 시작하면서 주말 아침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열고 ‘오늘 비가 내리나?’ 정원을 내다본다. 창문에 붙어서 식물들에게 아침인사를 하며 반가워 하다가 결국 옷을 갈아입고 정원으로 향한다.
한 번 나가면 3-4시간이 금방 지나있다. 그새 자라난 잡초 뽑고, 해충약도 뿌려주고, 허브 수확도 하다보면 땀을 흠뻑 흘리면서도 즐거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래저래 회사 일이 힘들었던 마음과 무거웠던 생각이 어느새 한결 가벼워져있다. 평일 아침에는 출근 준비에 바빠 매일 나오진 못하지만 조금만 일찍 일어났다 싶으면 바로 정원으로 나간다. 내가 없는 낮 시간 동안 너무 뜨겁지 않게 물을 흠뻑 뿌려주고 못 본 사이 새로 피어난 꽃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또 시간이 한참 지나있다.
퇴근 후에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정원으로 나간다. 일단 허브를 하나씩 쓰다듬으며 향기를 맡고 하루의 수고로움을 내려놓는다. 늦지만 조금씩 자라고 있는 로즈마리를 칭찬해주기도 하고, 기대보다 잘 자라지 못하는 바질 잎을 솎아주며 응원해주기고 하고, 벌레 먹기 전 여린 루꼴라 잎을 발견하고 신나서 수확도 한다. 페퍼민트 애플민트 로즈마리 바질, 타임, 딜까지. 어쩜 이리 은은한데 향기롭고 기분도 좋게 만들어주는 향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내 어깨에 쌓이듯 하루종일 한껏 올라간 긴장을 풀리게 만들어 주는 신비로운 허브다. 특별한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닌데, 쓰다듬고 만지고 향기 맡는 것 만으로 속상한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린다.
생각이 많고 늘 모든 잘 해내고 싶은 문제해결형 ISTJ다. 딱 회사일이 체질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는 솔직히 회사 일이 잘 맞지않아? 힘들지 않잖아. 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정도는 맞다. 감사하게도 하고 싶던 일을 재미있게 즐기면서 하고 있고 계획적인 문제해결형 답게 문제를 잘 처리하는 데에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감정 섞지 않고 일도 잘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회사 일이고, 그렇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럴 땐 집에 와서 종달새가 되었다. 밖에서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을 결혼 전엔 엄마에게 결혼 후엔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어떻게 하면 내일 출근해서 그 일을 더 잘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이 끊어지지 않아서 상대 앞에서 끊임없이 종달거리게 되는거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당신도 피곤한 하루였을텐데… 잘 들어주어 고맙지만 퇴근 후까지 끊임없이 일을 생각하는 나의 습관을 끊어내야한다고 다짐하고는 늘 반복하고 있었다.
정원을 가꾸며 루틴이 바뀌니 생활 패턴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아예 종달새가 안 되는건 아니지만.. 종달거리는 주제가 바뀌었다. 집에 오자마자 정원에 나가 꽃과 허브와 있다보면 하루 힘들었던 생각의 고리는 어느새 느슨해져있고 집에 돌아온 남편과 오늘 정원의 변화에 대해 신나서 브리핑한다. 낮동안 예쁘게 자란 허브를 수확해 피자도 구워먹고 샐러드도 해먹으며 속상함 대신 감사함을 나누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