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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Aug 24. 2023

열두 발자국

정재승

이 책은 뇌과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인 정재승 교수가 진행했던 12번의 뇌과학 강연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의사결정, 놀이, 미신, 창의성, 인공지능, 도전 등의 다양한 주제로 기업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들이다.


좋은 의사결정이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만약 저에게 물으신다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한 후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연구해서 찾아낸 훌륭한 의사결정법입니다. 우선 적절한 선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적절한 시기에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중략) 리더가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는 유형이라면, 의사결정을 바꾸더라도 리더십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내가 잘못했다. 상황이 바뀌었고, 추가로 우리가 이런 걸 알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사결정을 바꿔야 한다."라고 조직 구성원에게 얘기했을 때, 누가 그 리더를 비난하나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래를 위해 결정사항을 바꾸는 리더를 우리는 훨씬 더 존경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도를 그리기 위한 '방황의 시간'을 젊은이들에게서 박탈하고 있습니다. 학기가 끝나도 방학 동안 끊임없이 스펙을 쌓게 만들고,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뒤로 밀리는 세상으로 그들을 내몰고 있습니다. 다들 남들이 뭘 하는지 보고, 남들이 가는 데로 우르르 몰려가는 거죠. 집단적 선택 안에 있을 때 나약한 개인은 안전함을 느낍니다.
-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중에서


그런데 왜 특히 요즘에 와서 결정장애가 더 사회적인 이슈가 됐을까요? 저는 그것이 '사회적 안전망의 부족'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한 번  잘못된 선택을 해도 재기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습니다. 좋은 대학을 못 가도, 대학에서 놀거나 취미생활에 빠져 성적이 안 좋아도 취직 걱정이 적었고, 어떤 시기를 놓쳐도 늦게라도 결혼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제때 딱딱 맞추지 못하면 완전히 낙오되기 때문에, 패자부활전이 점점 줄고 있어요. 한 번 미끄러지면 재기가 불가능한 사회에서 젊은이들로서는 매번 굉장히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거예요.

(중략) 결핍이 욕망을 만듭니다. 뭔가 부족해야 그 결핍 때문에 뭘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요. 요즘 아이들은 영어를 잘하고 싶어 해외에 보내달라고 떼쓰지 않아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부모가 알아서 해외연수를 보내주죠. 또 공부의 부족함을 느끼고 학원이나 과외를 받게 해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부모가 먼저 알아채고 가장 좋은 학원에 데리고 갑니다. 그들은 결핍이 되기 전에 욕망이 충족된 경험을 오랫동안 쌓아오면서 무언가를 절실히 욕망하지 않는 세대로 성장합니다. 대학 때까지는 부모 품에 있으니 별 문제가 없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내가 뭘 하고 살지 결정을 못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자신만의 지도를 그린 경험도 없고, 자신의 욕망을 대면할 기회도 없었던 거죠.

(중략) 결정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각의 선택지가 가진 장단점을 파악한 뒤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인생에서 경험한 선호나 우선순위가 적용됩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할수록 결정이 쉬워져요. 정답은 없지만 사람마다 다른 기준이 존재하지요. 어릴 때부터 늘 부모가 대신 의사결정을 해주고 부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로 아이가 따라간다면, 나중에 아이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결정을 확신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게 돼요.
-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중에서


도로 정보와 GPS를 통해 얻는 자동차의 움직임 정보까지 모두 비트화해서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를 일치하게 해 준 결과, 내비게이션과 우버 서비스가 가능해졌습니다. 더 나아가 차선 안에서의 구체적인 정보, 도로의 노면 정보, 보행자에 대한 정보, 심지어 날씨와 계절에 따른 변화까지도 모두 고스란히 비트화해 놓으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운전을 하면 우리보다 더 안전하게 운전하게 될 겁니다. 아톰과 비트의 세계가 일치해, 교통 시스템을 넘어 제조업과 유통업 전반에 걸쳐 산업 혁신을 구현하겠다는 것이 바로 '제4차 산업혁명'입니다.
- <제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의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중에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서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서강연들을 실제로 참석했다면 정말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좋은 선택과 의사 결정에 대한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와 결정장애라는 말이 생길만큼 결정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 사회 현상에 대한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라는 두개의 강연 내용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내용 하나하나 한 바닥 밑줄을 그었다.


뇌에서 선택이 잘 이루어지려면 욕망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 적당한 결핍의 경험과 내 선택의 기준이 되는 나만의 지도가 필요한데, 지금 우리 사회는 스스로의 지도를 그릴 겨를이나 결핍의 기회를 적절하게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회적 안전감을 느끼기 어려운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 진로나 인생의 변곡점에서의 결정은 더더욱 실패를 두렵게 만들고 있다. 왜 결정장애라는 말이 생겨났는지 너무 잘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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