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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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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맘 Jan 11. 2019

한 달에 3킬로그램 빠진 사연

막내는 괴로워

영업점에서 업무가 손에 능숙해지기까지 대략 1년의 적응기간이 있었던 것 같다.


신입직원에게 1년의 회사생활은 어떤 의미일까?


내 지정자리가 생기고, 앉아서 업무를 보게 되자 담당 책임자분이 말했다.


"앞으로 3개월 동안 실수 하는 거는 눈감아줄테니 3개월 이후에는 절대 실수하면 안돼."


은행은 돈이 오고가는 업무이다. 조금의 실수가 있으면 고객에게 혹은 은행 직원을 포함한 은행에게 그 피해가 상당하다.


예를 들어, 고객이 환전하러 은행에 왔는데 담당직원이 실수로 환율을 잘못 입력하여 피해액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이 되었고, 이는 직원이 자비를 털어 손실액을 메꾸었다. '0' 하나만 더 입력해도 백만원에서 천만원이되고, 천만원에서 억단위가 된다.


그래서 정신 빠짝차리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 손실이 나면 고스란히 직원이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돈을 다루는 직업은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매 초마다 주가가 바뀌는 증권사 직원은 오죽할까.


신입직원들은 영업점에서 실수를 많이 한다. 그래서 신입직원 자리에 앉아면 작은 푯말이 붙어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입직원입니다. 업무처리가 늦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고객에게 미리 신입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은행에 가서 이런 푯말이 있는 자리에 가면 딱 보아도 누가봐도 어색하고 불안정해보이는 어리버리한 직원 한 명이 앉아있다.


나 역시 고객에게 깜빡하고 신분증과 도장을 돌려주지 않은 작은 실수부터 업무가 익숙치 않아 매일같이 시재를 틀렸다.


내가 영업점의 전체 시재를 맡는 모출납이어서

(모출납은 영업점 CD기를 포함하여 허드렛일이 많아 보통 막내가 맡는다.)


내가 시재를 맞추지 못하면 다른 직원도 퇴근을 할 수가 없었다.


영업점에 온 신입들이 대부분 해메는 게 시재맞추는 거다.

그래서 기존 직원들은 신입이 온다고 하면 꺼리는 분들도 많다.

본인들도 퇴근하기 위해 발벗고 신입직원의 시재를 맞춰야 한다 ㅎㅎ

정확하게는, 신입직원의 옆자리는 모두가 기피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시재를 맞춘다는 것은 전산 상의 당일 총 들어온 돈과 당일 총 나간 돈을 현재 가지고 있는 시재와 동일한지 맞추는 것이다.


그날도 시재가 맞지 않아 밤 10시까지 금고에 남아 돈을 세던 나는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그놈의 돈돈돈. 이제 더 이상 쳐다보기가 싫었다.


한동안 시재를 맞추지 못한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차장님.. 저 시재가 계속 안맞아요."

라고 하면


"또?! (다른 직원들에게) 여러분. 오늘도 당첨! 저녁부터 먹고 합시다!"


자동으로 야근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렇게 다른 직원들에게 적지않은 민폐를 끼쳤다.

 

신입직원은 일명 '막내'로 통한다.

'막내'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 되기도 하고, 어쩌면 매우 고달파지기도 한다.


특권이 될 때는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크게 쪼임당하지 않고 다른 직원들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외의 것들에서 막내는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


여기서는 싹싹하고 붙임성 좋은 성격이 유리하다.

불행히도 나는 무뚝뚝하고 붙임성이 좋지 않았기에 아주 애를 먹었다.


지점에서 막내에게 기대하는 것은 패기와 열정, 그리고 분위기 메이커이다.

업무도 서투르니 그 외에 것에서 기대를 하는 것이다.


사랑받는 막내는 다음과 같다.


모든 직원이 출근하기 전, (가능하면) 모든 직원의 책상을 깨끗히 정리정돈하고,

직원들이 출근하면 밝은 미소와 함께

"좋은 아침입니다!" 라며 활기찬 아침을 맞이하도록 운을 띄어준다.

더 나아가 커피까지 미리 대령하면 사랑받을 수 있다.


아침 체조시간에는 직원들이 힘차게 아침을 맞이하도록 구령을 외치고, 마지막에 지점 구호를 외치며 화이팅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금고문이 열리면 모든 직원들의 시재박스를 손수 직원들 자리에 배달해준다. 직원들의 동선을 줄여주는 것이다.


영업시간에는 직원들의 잔신부름을 맡는다.

(카드기계 혹은 씨디기가 고장날 경우 수시로 불려간다.)


영업시간이 종료되면 직원들의 시재박스를 금고에 옮겨주고, 식사시간이 되면 야근하는 직원들의 메뉴를 받아 식사주문을 한다.


회식자리가 열리면 건배사를 하여 즐거운 분위기를 만든다. 중간에 술이 떨어지면 미리미리 술병을 채워넣는다. 2차로 노래방을 가게 되면 탬버린과 하나가 되어, 환상의 노래가 되도록 미친듯이 탬버린을 흔들어댄다.


이 외에 누가 보험을 팔면 지점 전체쪽지를 띄어 해당 직원이 자부심을 느끼고 다른 직원들이 자극을 받도록 축하메시지를 띄운다.


정신없이 업무를 익히는 동시에 그 이외의 것들도 무진장 신경써야 한다. 그리고 실적까지 채워야 한다.


무슨 실적?


신용카드?!


처음에 나는 카드 200개를 해오라고 주문을 받았다. 그래서 주변 친구, 친척들을 포함해 미친듯이 전화하고 영업을 했다. 물론 200개를 다 채우지 못했지만 그에 준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했다.


그렇게 은행에서의 한 달이 지났고 내 몸무게는 3킬로그램이 빠져있었다.

좋아해야 하는 건지. ㅎㅎ


그리고.. 그렇게 고대하던 첫. 월급을 드디어.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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