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육아휴직
영업점에서 폭풍같은 1년간의 신입생활이 끝나갈 무렵, 나는 강도높은 노동시간, 민원인 처리, 영업실적에 대한 스트레스, 잦은 회식 등으로 몸과 멘탈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저질체력인 나는 오후 네시만 되면 눈치껏, 틈틈히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했다. 이제는 돈이 돈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종이 쪼가리였다.
넓디 넓은 나의 발볼은 딱딱한 구두안에서 일그러진 채 매일같이 비명을 질렀다.
'제발 쫌..!'
우연히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앞에 두 책임자가 오고가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은행생활 약 15년차 직원이 20년 차 직원에게 물음)
"차장님은 은행생활 중에서 언제가 가장 힘드셨어요?"
라고 묻길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은행 20년차 직원은 뭐가 젤 힘들까? 지점장이 푸쉬할때? 민원인들 처리할 때? 사고 터질때?'
라고 생각하며 내 나름대로 추측을 했다.
근데 그 직원분이 뜻밖의 말을 했다.
"음.. 나는 신입이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나는 뭔가 모를 뭉클함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랬다. 누구나 가장 서툴고 실수많은 신입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이 가장 지치고 힘들었다는 것을.
누군가의 그 한마디가 그날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신혼생활을 막 시작한 풋풋한 새댁이었다.
밝게 빛나는 달빛을 보며 퇴근한 나는 신랑에게 말했다.
"여보. 이제 좀 쉬고 싶다..."
"으응? 그래 쉬어~."
내 말의 의미를 잘 못알아듣는 동물에게 나는 다시 귀에다 대고 크게 이야기 했다.
"육아휴직 들어가고 싶다고오!!"
"....!"
남편은 나의 고급스러운 비유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암튼 뭐든 콕! 찝어줘야 안다.
결혼을 하고 따로 피임을 하지 않았었다. 아이가 생기면 생기는 데로 낳아야 겠다는 생각이었기에. 하지만 반년이 되어도 임신이 되지 않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생 오이가 너무 먹고 싶었다. 그리고 몸에서 살짝 열감이 돌고, 얼굴도 미열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몸의 변화에 민감했던 나는
'설마' 라는 생각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해보았고, 결과는.. 선명한 두 줄이 나에게 '임신'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앗 싸!"
기쁨과 놀라움, 그리고 뭉클함이 교차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육.아.휴.직.을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았다. 물론 내가 엄마가 된다는 그 이상의 고귀한 감동도 있었다.
그리고 5개월 뒤, 나는 주변 직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특히 남성분들 ㅡㅡ) 첫 번째. 육아휴직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