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지방의 어느 클럽. 어둡고 담배연기 자욱한 그곳에 우리는 저녁에 있을 공연을 위해 모였다. 내가 속한 밴드 동아리의 학기말 공연이었다. 그동안 틈틈이 연습해온 곡들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며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파티 자리였다. 홍대 클럽 공연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학생들을 비롯해서 동네 주민들도 와서 즐겼기 때문에 분위기는 제법 그럴듯했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잘하는 팀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팀도 있었지만 흥겹게 흘러갔다.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었다. 멤버들은 각자의 악기 앞에, 나도 드럼 세트 앞에 앉아 조율을 했다. 고개를 들어 홀을 바라보니 사람들로 북적였다. 호흡을 가다듬고 시험 삼아 베이스 드럼의 페달을 가볍게 밟아보았다. 둥.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손과 발도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싫은 것들이 참 많다.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지금 이 시점에서는 단연코 '발표하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무대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발표하기 전부터 긴장을 하고 발표를 시작하면 얼굴이 붉어지며 목소리가 떨린다. 나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떠오르는 일이 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을 했다. 딴에는 떠올린 답이 맞다고 확신해서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이야, 성준이, 맞았어, 정답이야'같은 반응을 기대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나의 발표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때 내가 달라붙어 있던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는 것을 느꼈다. 확실해 보이던 세계가 불확실한 것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게 결정적인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 날의 기분은 선명하게 남아있고 나는 그 선생님이 아직도 원망스럽다. 그날 이후로 자신있게 손을 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태도의 문제겠지만, 나의 경우 방구석에서 혼자 하던 '어떤 일'과 사람들 앞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일'을 행하는 것, 행하는 나를 보는 타인들의 시선을 받는 것, 시선을 받는 나를 바라보는 것. 이 세 겹의 일들을 동시에 의식하다 보니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웠다. 누군가는 "평소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해."라고 이야기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에서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나올 수밖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 가능하다면 회피함으로써 웃음거리가 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내가 택한 방법이었다.
그때 내가 태어나서 가장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보컬을 맡은 형이 시작을 알렸다. 클럽에는 정적이 흘렀다. 무거운 공기가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나의 드럼 스틱을 딱, 딱, 딱, 딱하고 네 번 부딪히는 소리를 신호로 우리의 공연은 시작되었다.
박자를 절기도 하고 악보와 다르게 연주를 하기도 했지만 큰 사고 없이 공연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연습 덕이었다. 즐겨 듣던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일은 귀로 감상하는 것을 넘어 온몸으로 음악을 경험하는 방법이었다. 또 한편으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던 내가 자연스럽게 혼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과제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시간보다 연습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실력이 느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던 것 같다. 확실히 몸이 기억하게 만드는 것만큼 무대에서 잘 해내기에 효과적인 것은 없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들렸다. 무사히 끝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은 것은 연주를 하던 그 순간이었다. 시간은 멈춘 듯 천천히 흘러갔고 클럽의 모든 소리가 피부에 와닿았다. 처음에는 틀리지 않기 위해 집중했었다. 다행히 큰 실수는 하지 않았다. 연주가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고 나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관객들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음악에 맞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몸을 흔들기도 했다. 또 그들이 같이 노래를 따라 불러주는 것은 낯설지만 강렬한 경험이었다. 얼굴에 웃음이 지어지고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음악을 매개로 그들과 나는 연결된 것이다. 그들은 내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처음의 그 떨림은 다른 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무대공포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지금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 그래도 이 보잘 것없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어떤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